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 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 리 없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발췌
나의 출산과 아기의 소식은 내가 알렸던 지인들이 다른 지인들과 소식을 공유하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내 예상을 벗어난 속도와 범위였다. 마음이 정리되고, 울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되면 담담하게 알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위로의 전화와 문자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생명에 지장 없으면 괜찮다.
처음부터 없었으니 아기가 잘 적응할 거다.
너희 부부에게 태어났으니 잘 클 거다.
엄마가 슬퍼하면 아기가 다 안다. 그러면 그 영향이 아기한테도 간다.
이제 그만 울고 감사함으로 받아야지 언제까지 슬퍼할 거냐.
모유 잘 먹여라. 그래야 튼튼하게 커서 나중에 수술도 견딘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크게 하시려는 뜻이 있어서 일어난 일이다.
사람이 손가락이 세 개일 수도 있지, 뭐가 어때서 그래요?
조리원 내 방에서 고개를 떨구고 멍하니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몸 추스르면 연락하겠다고 답을 했는데도 문자를 계속 보내는 이도 있었다. 나를 붙들고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마음이 점점 묘하고 복잡해지는데 대꾸할 여력이 없어서 나중에는 알겠다고, 감사하다고만 대답해 놓고 속을 앓았다.
걱정해서 해 주는 말이니까 고맙게 생각하려고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들의 선한 의도와 좋은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오히려 옹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불편한 감정을 머리로 다독여야 하는 게 피곤했고,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닌데 이런 애까지 써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좀 편안해졌다가도 문득 날아드는 연락들에 마음이 물풍선처럼 툭 터져버려서 다시 의욕을 잃고 널브러지곤 했다. 겨우 붙들고 있는 마음이라 작은 바람에도 휘청였던 것이다. 나중엔 그만 꽥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제발 그냥 나 좀 내버려 두세요!”
나는 언젠가는 눈물을 닦고 기운을 차리겠지만, 그것이 당장 며칠 만에 될 일은 아니었다. 한 번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목놓아 울고 싶었다. 입원실, 조리원에서는 숨죽여 울거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우는 것뿐이었는데 그조차도 그만하라니, 가혹했다. 내가 방에서 몰래 우는데도 저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에게 영향이 갈까?
그즈음 꿈을 꾸었다. 피아노를 다 치고, 뚜껑을 덮기 전 덮개를 펼쳐 건반을 덮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피아노 뒤에, 나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서 피아노 뚜껑을 덮어버렸고, 내 양손이 뚜껑에 깔렸다. 아파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 사람은 뚜껑이 완전히 닫히지 않자 계속 더 힘을 주어 뚜껑을 내리눌렀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기다려달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내가 그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듯했다.
내가 왜 그 말이 힘들고 괴로운지 설명한다 한들 그들이 이해할까? 아마 유별나다고 흉보거나,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다고 기분 나빠하겠지?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다.
'아! 나도 그랬구나.'
그동안 살면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위로한답시고 얼마나 많이 지껄여댔던가? 내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반추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말을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싶으니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했구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말을 위로랍시고 받으라고 던졌구나.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날 밤은 기억도 못 하는 나의 옛말을 기도로 사죄하며 전전긍긍했다.
“악의가 없어도 얼마든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은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면서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배워야 아는 고통, 배워야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 세상에는 더 많다. 그래야 최소한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