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릴 때도 글이 구려 보일까 봐 몇 개의 단어만 쓰는 나로서는 다분히 충동적인 일이었다.
책에도 잠깐 적었지만, 약물치료를 받다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기가 온다. 아마도 책 쓰기 클래스를 들은 건 그 시기였을 거고, 채 오 분도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수강료를 냈다. 클래스 시작까지는 약 한 달 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어떤 글을 쓸 지에 대해 생각하고, 콘텐츠도 미리 마련해 오라는 뜻으로 읽혔다.
다시 우울이 찾아오던 날들에는 그 클래스를 신청한 내가 죽도록 미웠다. 글감도 없고, 살면서 별로 멋지게 도전해본 일도 없으면서 무슨 책을 내겠다고. 정 그러면 환불을 하면 됐을 텐데, 또 그건 자존심이 상해서 싫었다. (어쩌라고?)
아직 추운 겨울이었다. 경칩이 지났다는데도 겨울에 매일같이 입던 솜패딩은 옷장 안으로 들어갈 줄을 몰랐다. 여전히 일은 넘쳤다. 밤 열 시가 다 되어 쫓기듯 회사 밖으로 나서면서 문득 깨달았다.
회사 이야기가 나의 전부라면, 나는 그걸 쓸 수밖에 없겠구나
그 이후로는 마치 첩자가 된 것처럼 이중생활의 연속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쓴소리를 해대면 '헷, 글감이 생겼다'라고 좋아했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일들을 꾸역꾸역 해내며 약간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아, 회사가 정말 힘드니까 나에게는 글 쓸 자격이 생겼구나 하고.
서둘러 글을 마감하고, 오밤중에 퇴근하고도 을지로로 달려가 책을 검수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몇 곳의 서점에 책을 입고시켰다. 의외로 빠르게 팔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울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아직 내 인생도 허우적거리며 버텨내고 있는데 뭐라고 책을 내서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했나. 하루에도 몇 번씩 몇 개 남지도 않은 재고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달여가 흘렀다. 이런저런 책방과, 정말 소중한 독자님들로부터 난생처음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도 봤고, 내 책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정성 어린 카톡과 후기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던 중, 트위터인가 어디에서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린 문장을 만났다. (정확히 인용을 하고 싶은데, 술김에 스치듯 읽은지라 찾을 수가 없다...) 누군가의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 '대단한 글이 아주 조금 있는 세상보다는, 그저 그런 글이 많이 쓰이는 세상이 더 좋은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었다.
내 글은 그저 그렇다. 엄청난 인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민망할 정도의 비문도 몇 개 있지만 그래도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어쨌든 내가 용기와, 시간과, 노력과, 그리고 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를 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조금은 더 당당하고 뻔뻔해져야지.
지난 한 달은 내가 쓴 글이 어떻게 읽혀도 그것이 내 소관이 아니라는 데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한대리고, '불안장애가~(이하 생략)'라는 책을 냈고, 군데군데 이상한 부분이 있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이야기로 읽히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