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하영 Apr 07. 2016

막말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막말과 폭언에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한.

과장이 말합니다.


"너는 일을 이따구로 밖에 못하냐. 하여튼간 요즘 것들은 머리에 똥만 차서는 맨 놀 생각만 하지 일을 제대로 하려는 노력은 안하지. 이거 다시 해 갖고 와!"


저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기 보다는 당황, 창피, 모멸, 수치, 분노 등의 감정을 먼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 이후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을 수 있습니다. 


'아니, 지가 상사면 다야? 왜 저따구로 밖에 얘길 못하는데?'

'아니, 여기 아니면 회사가 없나? 드럽고 치사해서 진짜, 내가 이놈의 회사 때려친다. 때려 쳐!'

'내 머리에 똥이 찼는지 황금이 찼는지 지가 봤어? 지 머리에 똥이 찼으니 남의 머리에도 똥만 찼다고 생각하는거지'


혹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맞아, 난 이것도 못하는 등신이야. 과장님 말씀이 맞아. 내 머리엔 정말 똥만 찼나봐.'

'난 가능성이 없나봐. 다른 사람들은 문제 없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나만 항상 왜그러지? 난 항상 문제만 일으켜'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에 해당하십니까?


첫번째, 혹은 두번째여도 괜찮습니다.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저의 경우 막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막상 막말을 들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모욕감을 느끼기도,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 내가 정말 등신인걸까? 내 머리엔 정말 똥만 찬 것일까?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좀 더 좋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깐.. 

결국 처음에는 막말이 매우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피드백이 거듭될수록 정말 내가 등신, 바보처럼 느껴지고,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고 뿌리 깊게 내 안에서 자리 잡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흥미가 생기지 않고, 어차피 해도 잘 안될거야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죠. 그리고 긴장하면 할수록 실수도 잦아지니 주위 동료들까지도 왠지 이런 나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막말이 주는 폐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타인의 삶을 교묘하게 망가뜨리는데 있다고 봅니다. 처음엔 막말을 부정하다가도 반복적인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세뇌되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을 정말 바보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막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쿨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후회를 느끼진 마세요. 막말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갑의 성인군자거나 아니면 위선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는데 능통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거짓된 쿨함보다는 진실된 찌질함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음껏 찌질해져도 괜찮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반복되는 막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첫번째, 상한 감정을 공유합니다. 

두번째, 나의 감정을 해석해봅니다. 

세번째, 있는 그대로 상대를 봅니다.  

네번째, 상대의 욕구를 파악해봅니다. 

다섯번째, 상대의 욕구에 응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여섯번째, 내가 결정한 바에 따라 노력해봅니다. 


상한 감정을 공유합니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 속으로만 끙끙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분노나 모멸감이 같은 상황에 처했던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런 막말이 나의 잘못으로 귀착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로써 내뱉어진 고통은 더이상 고통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누군가와 공유함으로써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그 상대가 나에게 의미있는 대상이라면 그들이 주는 위안은 다른 어떤 이들의 위로보다도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위 사람과 충분히 공유해보세요. 말하는 순간 조금은 가벼워지고 마구 헝클어졌던 감정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고무공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면 공이 순간적으로 찌그러들었다가 다시 원래의 상태대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회복탄력성이란 바로 이렇게 찌그러지고 상처받은 마음이 본래의 상태대로 돌아오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스트레스로 마음이 상했을 때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나 회복의 정도가 사람들마다 상이할겁니다. 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사람'입니다. 나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다시 한번 해보자!' 하는 말들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기적같은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유의미한 사람은 '단 한사람'이어도 괜찮습니다. 


나의 감정을 해석해봅니다


막말을 듣고 나면 (꼭 막말이 아니더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말들을 들었을 때) 일단 감정이 앞서고, 그리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저는 일단 느껴지는대로 느껴봅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후 내가 왜 그런 감정들을 느꼈는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혹은 남들은 그냥 듣고 넘겼을 말들인데 왜 나만 유독 기분이 상해하는지도 들여다봅니다.  


저는 막말의 대상을 만나 곤욕을 치르고 나면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답답하다" 였습니다. 억울하다거나 창피하다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정말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다, 나랑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다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라면, 상사라면, 여자라면, 엄마라면, 아빠라면, 언니라면... 끝도 없는 ~라면을 외치며 만약 내가 그 사람이라면 저렇게 얘기하진 않았을텐데..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더 라면 저렇게 막말하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로 '그려러니'가 안되었던 것이죠. 그저 똥 한번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될 일, 에잇! 재수없어! 하고 넘어갈 일들에 하나 하나 반응하는 저를 보니 답답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니 왜 나는 다른 사람을 내 입장에서 자꾸 이해하려고 들까?

타인이 나와 모습이 다르듯 마음이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든데, 하물며 남을 바꾸는 일은 당연히 힘들지 않을까? 

그저 나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보려고 노력해보자.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막말이 용서가 되고, 정당화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말은 여전히 나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로써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말을 내뱉은 사람을 원망해 봐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왜냐면... 그는 내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답답함이나 기타 다른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면 그 감정들이 어디에서 연유되는 것인지 고민해봅니다. 그저 짜증난다, 화가 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감정이나 상처가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내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해석하는 것은 막말로 인한 상처가 회복되는데 중요한 키가 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봅니다


'그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자.' 하루에도 거듭 생각했던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그런 막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인정을 해? 그게 가능하기라도 한거야? 그런 막말하는 인간들을 인정하면 내가 뭐가 되는거야?? 그 사람이 했던 모욕적인 말을 인정해버리라는거야?


제가 말씀드리는 인정이란 잘했다 잘못했다라는 가치판단을 하지 말고 그냥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어떠한 기준도 들이대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죠. 


물론! 요거 쉽지 않습니다. ㅎㅎ 

그저 두고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 역시 경험했으니까요. 그리고 아직도 그저 두고보기, 인정하기가 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방법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감정을 담아 반응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저 두보 보는 것, 인정하는 것은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막말을 받아내는 상황에서 아무런 감정을 섞지 않고 상대를 관찰하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어쩔 땐 저 역시도 그것이 되지 않아 같이 화나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너무 힘이 들 땐 영혼을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애국가를 부르거나 다이어리에 (물론 상대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재수x어, 시끄러, 이제 그만 등의 단어를 반복해서 적으며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라도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죠. 전화를 통해 유선으로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혼자 떠들도록 내버려둡니다. 귀에서 10센치 정도 수화기를 떼어놓고 말이죠. 말 그대로 정말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ㅎㅎ 

 

일단 부정적인 기분이 가라앉으면 다음 순간 우리가 해야 할 말이나 행동을 계획하기가 쉬워집니다.

절대 같이 역정내며 소리치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세요~ 역정내는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려면 감정적으로 다가서는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아닙니다. 


자. 여기에서 주의할 것 하나!

만약 폭언과 막말의 수위가 높아 그런 말들로 인해 내 삶의 균형이 깨어지고, 정신이 피폐해지며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한다면 굳이 그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행여 부모나, 형제자매, 배우자여도 말입니다. 물론 노력은 해볼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노력도 내가 준비가 되어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지 나 자신이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아무 동기도 부여되지 않은 상태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관계는 끊어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휴~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마지막 세 가지 방법은 다음 편에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따뜻한 봄날.

제 글이 당신에게 뜻밖의 선물같은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상처받지 않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