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요즘 생각
대학에 갓 입학해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그 숱한 술자리마다 수없이 듣던 말이 있다. 어려서 좋겠다. 신입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싱그러움에 다들 취한 것도 같았다. 당연히 그럴 테지 신학기 한국의 삼월이란 냉장고에서 막 꺼낸 탄산음료마냥 코끝이 따갑도록 차가우니까.
하지만 당시의 나는 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그 칭찬 아닌 칭찬이 그렇게 서글펐다. 그 자리에서 만큼은 분명히 나도 새것 중의 하나였을 텐데. 꼭 새것처럼 보이려고 새 옷을 빌려 입고 앉은 가짜처럼 멀뚱하고 어색하게 억지로 웃고나 있었을 뿐 주는 대로 술이나 마셨을 뿐.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얼마나 금방 가는데 그런 불만스러운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곧 잃어버릴 것을 붙들고 불안히 서성이는 어린애처럼 대답을 잃었다. 허튼 청춘을 치하받는 일은 그렇게 힘들고 지치는 것이었다.
청춘이 빛나는 이유는 신이 주는 위로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순간의 반짝임 뿐인 빈 손의 젊음을 어딘가의 절대자가 위로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 그때의 나는 가진 것 없이 상경한 외로움을 태어나 처음 겪느라 홀로 그런 음울한 짐작이나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땅 위 보호자를 잃은 고작 스무 살. 열아홉에서 한 해 더 살았다고 어린애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일은 즐거웠다. 시간을 거스르는 걱정을 떨어내고 잘못한 선택을 잊도록 만드는 액체. 새로운 경험이었다. 만취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은 대단해. 대단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학점이 바닥을 기도록 놀았다. 상경하기 위하여 독서실 한 구석에서 문제와 답을 머릿속에 욱여넣던 나는 없었다. 청춘. 나는 그것이 사라지는 매일을 외면하려고 방종하였던가 생각해 본다. 나를 감싼 겹겹의 색지가 한 장씩 사라져 언젠가 무채색 맨몸의 나만 남을 것이 두려워 그랬던가 하고. 두렵지. 두려웠다. 아직도 무섭고 겁이 나는 일이다.
한때 내 장례식은 수목장으로 하면 어떨까 고민한 일이 있다. 그러니까 죽으면 어떻게 되려나- 같은 생각을 해봤던 것이다. 내가 묻힌 곳 위의 나무는 어떻게 자라날까. 나무는 흰 동백나무면 좋겠다. 꽤나 구체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랜 기간 종교를 갖고 살았으나 내세에 대한 기대 환상 그런 것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날 오후 걷다 그만 무심코 흘린 종이 쓰레기를 모르는 척했다. 약 5g 정도 더 죄질이 무거운 생이 되었다. 흠. 내가 죽고 피어난 동백꽃을 누군가 따가도 모르는 척해줄 테니 퉁 칩시다. 흰 동백은 비싸다고요. 멋대로 생각하고 우스워했다.
어떤 어른이 될까, 그렇게나 고민을 거듭하며 살았으나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결국 신입생이 되어 마셔 없앤 술이 내 청춘이었던 셈인가. 상당히 즐거웠고 돈은 대부분 내지 않았으니 남는 장사네. 아무쪼록 지금부터 시작할 고민은 좀 더 아기자기하고 컬러풀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백발이 된 후에 무슨 색으로 머리칼을 염색할까 하는 것. 색이 잘 나올 테니까 핑크 뮬리 같은 색으로 해야지. 지나가는 아기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어 하면 기꺼이 고개를 기울여 줄 생각이다. 솜사탕 머리색을 하고 솜사탕 파는 할머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만.
청춘이 저물면 낙엽이 된다는 우울감 따위. 내 청춘은 저물어 핑크 뮬리 솜사탕이 될 텐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