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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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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Jun 08. 2021

육아 노동자 비긴즈

[334일] 아빠도 홀로서기가 처음이라

 육아 휴직을 신청하기 위해 회사에 잠깐 나갔다. 15일 무급휴직, 한 달 유급휴직이 아니라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막상 내려니 왠지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육아휴직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팀장이 그런 말을 했었다.

 

"진급 대상자 비고에 휴직이 쓰여 있으면 아무래도 위에서 좋게 보지를 않아."


 그 때문인지 이번 승격에서 나는 누락고, 아마도 6개월 휴직하고 복직하면 다음 승격도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 한다. 올라탄 사다리가 걷어 차인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7년간 회사를 뺀 나를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말로는 퇴사하고 뭐라도 할 거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실상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시간 되면 출근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일이 끝나면 껍데기만 남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 단조로운 트랙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가 되었다.

위에 말 좀 잘해주세요. 월급 좀 제대로 받게요.


 요즘 아이는 부쩍 홀로 서는 연습을 한다.

거실 창문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흔들흔들하던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손을 놓고 빙그레 웃는 여유까지 보인다. 그래 봐야 15초 정도지만 아이는 그게 뭐 그리 재밌는지 다리에 힘이 빠져 15초가 5초가 될 때까지 한동안 섰다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TV 서랍장, 소파, 장난감 버스, 심지어 누워있는 아빠 뱃살까지 아이는 조금만 높아 보이면 잡고 일어서려 든다. 자리만 나면 어떻게든 눕고 싶은 아빠와 대비된다.


 대신 기저귀 갈아 입히는 일이 힘들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와 아이 사이에 힘겨루기가 펼쳐진다. 자유 의지가 충만해서 인지 팔다리를 잡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몸을 베베 꼬아가며 어떻게든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든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아이와 씨름하고 나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앉히기만 하면 칭얼대던 유모차는 다행히 이제 별 탈 없이 앉는다. 아마도 반복학습의 승리인 것 같다. 휴직을 하고 별일이 없으면 아이와 매일 산책을 한다. 여기서 별일이란 미세먼지가 '나쁨' 이상이거나 비가 오는 날을 말한다. 보통은 집 근처 공원에서 약 한 시간 정도 유모차를 끌다 온다. 그 한 시간은 아이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교도소 수감자처럼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애 밥 먹이고, 기저귀 갈고, 우는 거 달래고 하다 보면 애보다 내가 먼저 나가고 싶은 마음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5월 장미라지만 피는 때는 저마다 다르더라


 10개월이 된 아이는 혼자 잘 논다. 덕분에 전에 비해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에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아이가 가끔 혼자 놀다가 조용히 손가락을 만지거나 거실 창밖을 바라보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을 때면 그게 또 마음이 쓰인다. 아이의 시무룩한 얼굴에서 내 어린 시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아마도 다섯 살쯤)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까지 난 늘 혼자였다.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없다는 걸 일찍 알았던 나머지 혼잣말을 배웠고, 어른이 된 지금도 난 곧잘 혼잣말을 한다. 외로움의 대물림만은 피하고자 아이와 놀아주려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혼자 자란 아빠에겐 아이와 놀아주는 것조차 쉽지 않은 숙제다.  

아빠보다 나은 그의 최애 장난감


 전업 육아 노동자로 거듭난 지 만 두 달을 채웠다. (육아휴직은 이제 막 시작했지만)

밥 안 먹고 딴짓하거나 울어버리는 아이를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알게 되었고, 아이가 자고 깨고 먹는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게 그저 재우고, 씻기고, 먹이는 일이라면 이제 낙제는 얼추 피한 것 같다. 그러나 아이는 결코 신생아인 채로 머물러 있지 않고,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의 과업 또한 비례해서 늘어난다.


 비록 회사원으로서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체되었지만, 육아 노동자로서의 나는 매일 한 걸음씩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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