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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Mar 11. 2022

이별은 아빠도 어려워

[613일] 맹부삼천지교 아니고

 복직을 하고 정신을 차리니 3개월이 지났다. 그간 딱히 바빴던 것은 아닌데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마 그새 익숙해진 "아버님"이라는 칭호에서 "O대리"라는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나 보다.  


 아이는 생애 첫 이별을 했다. 정든 어린이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집에서 10분 거리에서 5분 거리로. 애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 어느 날부터 아이가 유모차를 거부하는 통에 아내의 팔만 더 굵어졌다. 처음부터 다시 적응하느라 30분, 1시간, 조금씩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중이다. 덕분에 아내와 내가 번갈아 가며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데 도대체 육아휴직 땐 어떻게 아이를 봤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안 들어가겠다고 요리조리 내빼는 아들을 보며 마음이 짠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것도 한번 겪어봤다고 곧 적응하리라 믿는다. 살아 보면 매 순간이 낯섦의 연속일 테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그럴 거고, 군 입대할 때도, 입사할 때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곧 죽을 것 같겠지. 마치 냉탕에 처음 들어가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뛰쳐나가고 싶은 것처럼. 그래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곧 그 안에서 헤엄치고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산책길에 이전 어린이집을 지나칠 때면 아이는 당연한 듯 그쪽으로 발을 이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한 길이라 그런 건지 알 길이 없다. 아내 말로는 새 어린이집이 시립이라 더 체계적이고 믿을만하다지만 난 사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다. 정은 아이가 아니라 내가 든 모양이다.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현관에서 인사하며 담임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은 아이를 마지막으로 한번 꼬옥 안아주었다. 창피하게 눈물이 핑 돌아 고개를 돌렸다. 10분이면 닿을 거리에 늘 있지만 앞으로 평생 만날 일은 딱히 없겠지. 어쩌면 아이는 그동안의 시간과 얼굴을 금방 잊을 테지만 우리 부부는 아마 가끔씩 생각이 날 것 같다. 내 아이를 처음으로 맡겼던 이들. 내게 숨 쉴 틈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 내 육아휴직을 함께 해준 동지들.


 그리고 보면 난 참 이별에 약하다. 아마도 어릴 때 부모님과 따로 살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이별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나. 살면서 다시는 안 보게 된 사람이 한 둘도 아닌데 가끔 생각나고, 또 그립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워할 것을 알기에 매번 헤어짐이 어렵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위로의 말을 나누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도 그리 질기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그리고 곧 더 떠날 모양이다. 햇수로 2년이 꽉 찼다. 무급휴직으로 버텨온 나날이. 회사가 어려워지고 바로 떠났던 동기들을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이제 새로운 회사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더라. 그들은 이제 우리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명하자면 바빠서 힘든 얼굴과 속앓이로 힘든 얼굴의 차이랄까? 둘 다 좋은 얼굴은 아니지만 확실히 결이 다르긴 했다.


 어쩌면 나는 이별이 엄두가 나지 않아 떠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새로운 만남이 두려울 수도 있고.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아까와는 달리 밝게 웃으며 날 맞는다. 오늘따라 20개월 아이가 서른여섯 해를 산 아빠보다 훨씬 용감해 보인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난 늘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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