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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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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Dec 10. 2021

복직에 대처하는 아빠와 아들

[522일] 부모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아빠


8개월 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왔다.

참 오랜만에 휴대폰 알람을 설정하고 잠에 들었고 아직 사위가 깜깜한 새벽에 차를 몰아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는 떠날 때와 다름없이 재미없고 조용한 곳이었다.

한 때는 모니터에 얼굴이 익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했던 곳.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무급휴직이 2년째 계속되어 쥐 파먹은 것처럼 사무실이 듬성듬성 비었다.

날지 못하는 시대에 비행기를 날려야 하는 숙명을 가진 자들은 각자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침전했다.

인사 절차가 잘못되어 한동안은 소속 확인 중인 신세가 되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사 Temporary인가!

원팀으로 돌아갈지 다른 팀으로 이동할지도 알 수 없어 하루 종일 밀린 메일만 정독했다.

그래도 그간 친숙했던 "아버님"이라는 호칭에서 "OO대리"라는 말을 듣자 사회로 복귀한 실감이 났다.


#아들


"아이가 아마도 아버님이 복직하는 걸 아는 것 같아요."


복직을 일주일 앞두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선생님 말에 의하면 요즘 아이가 아프고 유달리 매달리는 이유가 내 복직 때문이라는 거다.

하원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다 보니 아이도 변화를 느끼고 불안해하는 거란다.

그 때문인지 아이는 일주일 간 감기를 앓고 뒤이어 배탈로 일주일 내내 설사를 했다.

하루에 여섯 번 꼴로 변을 보았고, 자다가 변을 누는 바람에 한참을 깨어 있기도 했다.

단순히 어린이집에서 옮거나 뭘 잘 못 먹었거니 했는데 그게 다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니.

복직 준비는 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이 역시 아빠의 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는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난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지방에 계시는 통에 도움을 줄 수 없고, 아내와 나 모두 회사가 집에서 멀기 때문이다.

한 때 프로 야근러였던 나는 5시가 되면 뒤도 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와 쫓기듯 차를 몰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6시가 가까워올수록 손가락을 빨며 기다릴 아이 생각에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눈 떠 있는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던 우리는 이제 하루에 1시간 반 남짓 얼굴을 본다.

그마저도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과를 정해진 숙제처럼 하느라 얼굴 한번 비빌 정신도 없다.

출근길에 등원을 시키는 아내라고 다르지 않다. 정신없이 아이 등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본인을 조용히 올려다보더란다. 그 순간 갑자기 울컥했다는데 너무 공감이 됐다.


우리가 너무 우리 생각만 하는 걸까?

'미생'에서 워킹맘 선차장이 그런 말을 한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사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어."



요즘 들어 부쩍 잘 웃는 아이를 보면서도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저렇게 잘 웃는데 얼마나 부모가 보고 싶을까? 종일 어린이집에서 긴장한 모양인지 집에 오면 8시 전에 지쳐 잠드는 것도 안쓰럽고 미안하다.

부모가 되면 죄인이 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해 키우고, 못해주는 것들에 대해선 미안해하지 말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지만 현실은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죄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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