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비일기2

이별은 아빠도 어려워

[613일] 맹부삼천지교 아니고

by 제이선

복직을 하고 정신을 차리니 3개월이 지났다. 그간 딱히 바빴던 것은 아닌데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마 그새 익숙해진 "아버님"이라는 칭호에서 "O대리"라는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나 보다.


아이는 생애 첫 이별을 했다. 정든 어린이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집에서 10분 거리에서 5분 거리로. 애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 어느 날부터 아이가 유모차를 거부하는 통에 아내의 팔만 더 굵어졌다. 처음부터 다시 적응하느라 30분, 1시간, 조금씩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중이다. 덕분에 아내와 내가 번갈아 가며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데 도대체 육아휴직 땐 어떻게 아이를 봤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안 들어가겠다고 요리조리 내빼는 아들을 보며 마음이 짠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것도 한번 겪어봤다고 곧 적응하리라 믿는다. 살아 보면 매 순간이 낯섦의 연속일 테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그럴 거고, 군 입대할 때도, 입사할 때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곧 죽을 것 같겠지. 마치 냉탕에 처음 들어가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뛰쳐나가고 싶은 것처럼. 그래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곧 그 안에서 헤엄치고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산책길에 이전 어린이집을 지나칠 때면 아이는 당연한 듯 그쪽으로 발을 이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한 길이라 그런 건지 알 길이 없다. 아내 말로는 새 어린이집이 시립이라 더 체계적이고 믿을만하다지만 난 사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다. 정은 아이가 아니라 내가 든 모양이다.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현관에서 인사하며 담임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은 아이를 마지막으로 한번 꼬옥 안아주었다. 창피하게 눈물이 핑 돌아 고개를 돌렸다. 10분이면 닿을 거리에 늘 있지만 앞으로 평생 만날 일은 딱히 없겠지. 어쩌면 아이는 그동안의 시간과 얼굴을 금방 잊을 테지만 우리 부부는 아마 가끔씩 생각이 날 것 같다. 내 아이를 처음으로 맡겼던 이들. 내게 숨 쉴 틈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 내 육아휴직을 함께 해준 동지들.


그리고 보면 난 참 이별에 약하다. 아마도 어릴 때 부모님과 따로 살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이별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나. 살면서 다시는 안 보게 된 사람이 한 둘도 아닌데 가끔 생각나고, 또 그립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워할 것을 알기에 매번 헤어짐이 어렵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위로의 말을 나누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도 그리 질기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그리고 곧 더 떠날 모양이다. 햇수로 2년이 꽉 찼다. 무급휴직으로 버텨온 나날이. 회사가 어려워지고 바로 떠났던 동기들을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이제 새로운 회사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더라. 그들은 이제 우리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명하자면 바빠서 힘든 얼굴과 속앓이로 힘든 얼굴의 차이랄까? 둘 다 좋은 얼굴은 아니지만 확실히 결이 다르긴 했다.


어쩌면 나는 이별이 엄두가 나지 않아 떠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새로운 만남이 두려울 수도 있고.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아까와는 달리 밝게 웃으며 날 맞는다. 오늘따라 20개월 아이가 서른여섯 해를 산 아빠보다 훨씬 용감해 보인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난 늘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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