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비일기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선 Apr 29. 2022

나는 네가 육아 휴직 때 한 일을 알고 있다.

'턱걸이 한 개' <좋은생각 4월호>

모든 부모는 기억을 잃는다.

그래서 아내 대신 육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지나고 보니 치열했던 육아 휴직의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외롭고, 답답하고, 화가 났던 감정만이 남았다.


더 뜨거운 감정으로 '두 번째 진급 누락'이라는 글을 썼다.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덕분에 뜨거웠던 감정이 많이 정리되었고, 차가운 이성만 지닌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달라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나를 위해 그리고 아이를 위해 지나간 시간은 후회할 게 아니라 추억해야 한다.


나는 그때 무얼 했나,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내가 쓴 글을 뒤늦게 꺼내 읽는다.


턱걸이 한 개


 육아 휴직 중인 나는 매일 공원에서 유모차를 끈다. 평일 낮에 혼자 유모차를 끄는 게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다. 하지만 밥을 안 먹겠다고 떼쓰는 아들을 달래 밥을 먹이고, 아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점심 때우기를 반복하며 나는 새로운 일상에 조금씩 적응했다. 그중에서도 하루 30분, 공원을 걷는 일은 퍽퍽한 생활의 유일한 낙이다.


 공원 한쪽엔 철봉이 있다. 그 옆을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턱걸이는 내 오랜 콤플렉스였다. 남들은 다 한다는 턱걸이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군대 연병장에서, 헬스클럽에서 나는 철봉에 수없이 매달리고 곧 손을 털었다.


 유독 공원에 사람이 없던 날,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 용기 내어 철봉을 잡았다. 이를 악물고 양팔에 힘을 줬지만 봉에 가슴이 닿기도 전에 떨어졌다. 중력의 힘은 강했다. 유모차에 탄 아들이 눈을 껌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회사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승진에 떨어진 나를 위로하며 누구는 이직하고, 누구는 퇴근 후에 공부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육아 휴직을 낼 때 각오한 일이었지만 막상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답답했다. 남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에 나만 퇴보하는 듯했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살면서 포기한 숱한 일이 떠올랐다. 먼지 쌓인 악기, 앞장에만 손때가 묻은 교재, 소식이 끊긴 인연, 청춘의 꿈까지. 모두 턱걸이 한 개만큼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앞날이 언제나 푸를 것 같았던 그때는 붙잡은 손을 쉽게 놓고, 새로운 관심사에 미련 없이 손을 뻗었다. 중년에 가까워진 이제는 움켜쥔 손을 절대 풀지 않고 몸도 마음도 자꾸 제자리에 머물려고 한다.


 이대로 젊음을 맥없이 소진할 수는 없었다. ‘나를 위해 뭐라도 해야지.’ 우선 턱걸이 한 개부터 해 보기로 했다.


 턱걸이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철봉에 매달려 버티는 것이다. 팔이 얼얼해질 때까지 무작정 매달리자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철봉에 매달렸다. 굳은살이 딱딱해질수록 버티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 팔을 힘껏 당겼더니 기적처럼 철봉에 가슴이 닿았다. 평생 날 짓누른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낸 기쁨이 무척 오랜만이었다.


 턱걸이 하나에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부모 노릇은 어렵고,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턱걸이 개수가 폭발적으로 늘지도 않았다. 다섯 개에서 어떤 날은 네 개를 하기도 한다.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넷은 다섯이, 다섯은 곧 여섯이 될 테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숨을 들이마시고 철봉에 다시 매달리는 것이다.


<'좋은생각' 4월호에 실린 글>



추신) 22.4.29 현재 나는 11개의 턱걸이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진급 누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