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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Jul 11. 2022

슈퍼맨 아빠의 믿음

[735일] 영유아 발달 심화 평가를 취소하다

6개월을 기다린 발달 심화 평가 이틀 전,

우리 부부는 예약을 취소했다.

예약한 그날부터 6개월을 고민한 결과였다.

지금 예약하면 10개월은 더 기다려야 한다지만 후회는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참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이번만큼 고민한 적은 없었다.

나의 모자란 선택이 아이의 건강, 미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판정, 심화, 평가, 권고라는 단어의 무게


마침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아이는 부모인 내가 제일 잘 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 검사로 내 아이를 과연 얼마큼 평가할 수 있을까?

그 검사로 과거와 현재까지는 알 수 있겠지만, 아이의 미래를 과연 확정할 수 있을까?

확정한다 한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 될까?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믿지 못할 거라면 아이를 믿고, 또 부모인 나를 믿는 편이 나으리라.


내가 본 나의 아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아이였다.

물론 아이는 여전히 말을 하지 못 한다.

"엄마" 외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그마저도 입을 꾹 닫고 있기 일쑤다.

그래도 얼마 전부터 내가 "구~"하면 아이도 따라 "구~"하고 내게 웃어 보인다.

나는 그 얼굴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남들보다 늦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리긴 하지만 꾸준히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아빠인 나는 안다.

지난 2년, 세상 어느 아빠 부럽지 않을 만큼 가까이서 지켜본 아빠이기에 나는 확신한다.

그 확신에 누군가의 평가는 불필요하다.

 

육아 휴직 때 매일 아이와 산책하던 공원에는 휴직 내내 장미꽃이 피어 있었다.

5월에 피는 장미는 6월이면 검게 시들어 고개를 떨었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서는 새로운 장미가 붉게 피어올랐다. 어떤 장미는 9월에 피어 10월에 지기도 했다.

말하자면 내 아이는 아직 제 계절이 오지 않은 꽃일 뿐이다.

10월에 홀로 핀 장미

 

며칠 전 처가에 돌잔치가 있었다.

장인어른에게 아이를 맡겨 놓고 나는 모처럼만에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중 늙은 짐승이 내는 듯한 메마른 비명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호텔 직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전부 한 방향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조금 전 아이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사라진 방향이었다. 용수철이 튕겨나가듯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아이는 회전문에 붙어 울고 있고, 장인어른은 멈춤 버튼을 누르고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부수듯 옆 문을 밀어 제치고 반대편으로 넘어가 아이의 발을 힘껏 잡아 빼고 안아 들었다.

서둘러 신발을 벗겨 보니 아이의 왼쪽 발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행히 잔 상처 말고는 피도 없고 발가락도 잘 움직였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아이는 놀랐는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장인어른은 쉼 없이 말씀을 하셨다. 무척 당황하고 미안했나 보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며 자리로 돌아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커피잔을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뒷목에서 땀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눈을 뜨고 있어도 아이를 향해 뛰어가는 내 모습이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듯 리플레이됐다.

불러가는 아랫배만큼 누워있는 시간이 많은 내가,

마지막으로 전력 질주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한 내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뛸 수 있었을까?

우습지만 슈퍼 히어로라도 된 듯했다.

아이는 옆에서 우는데 나는 어깨가 자꾸 올라갔다.

이 무슨 철없는 아빠인가...


생각해 보니 그랬다.

지구가 위험에 처해서야 클라크가 안경을 벗어던지고 팬티를 바지 위에 입는 것처럼

나의 우주가 위험에 처하면 돌변하는,

나는야 슈퍼 히어로, 아니 녀석의 '보호자'였다.

우리 가족의 2주년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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