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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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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Sep 23. 2022

남의 손 안 빌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

[809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A대리, 혹시 외국어 전문가 양성 과정 안 할래?"

팀장 뜬금없이 내 자리로 와 물었다.

그것도 팀 내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화, 목 4시부터 6시야."


당황한 나도 덩달아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안되죠. 애 데리러 가야 돼요!"


외국어 전문가 양성 과정이란 무엇인가?

예비 해외 주재원을 대상으로 회사 차원에서 업무 시간 중에 직원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즉, 나는 팀장의 호의를 둘리의 호이 대하듯 발로 차 버린 것이다.


팀장은 "화, 목 이틀인데..."라고 겸연쩍어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소심한 성격의 나는 결국 메신저를 열어 제안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구구절절한 말들을 적었다.


팀장은 너도 곧 과장 진급할 거고, 지점장도 나가보고 해야 할 것 아니냐, 영어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중국어나 일본어 해야 한다. 다음 기회라도 자격증을 따도록 하라며 당연한 소리를 늘어 놓았다.


왜 굳이 야밤중에 설거지하는데 그 일이 생각난 것일까.

아내와 아이가 잠든 고요한 밤, 싱크대에 쌓여있는 식기들과 아이 젖병을 보고 쏟아지는 잠을 쫓았다.


시간은 10시.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5시 칼퇴를 하고, 6시 20분에 아이 하원을 시켜,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뒤늦게 내 밥을 먹고 나면 늘 이 시각이다.


6시 기상을 위해서는 최소 12시에 잠이 들어야 인간다운 수면 시간을 보장할 수 있다. 비록 거실에 가득한 아이 장난감 사이에서 낡은 인형처럼 구겨져 자는 잠이지만...

하루 24시간 중에 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시간인데, 그중 한 시간을 설거지에 쏟고 있다.


그러니 낮의 일이 갑자기 분통 터질 밖에.

내가 왜 5시 칼퇴를 할 수밖에 없는지 팀원들 전부가 아는데 팀장은 역시 모르는 모양이다.


내가 처음부터 칼퇴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입사 초기부터 누구보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혹시 퇴근 안 하고 회사에서 숙식하냐는 말까지 듣던 나였다.

신입사원 때는 눈치 보느라, 짬이 좀 들었을 때는 일이 많아서 나는 하루 12시간 넘게 회사에 머물곤 했다. 그 생활이 180도 꺾인 건, 아내가 임신하면서부터다.


사실 그 일이 계속 마음에 얹히는 이유는 팀장 때문만은 아니다.

팀장으로부터 메신저를 받고 나서 아내에게 톡을 했다.


'갑자기 외국어 전문가 과정 들어볼 생각 없냐네ㅋㅋㅋ 그래서 됐다 그랬어.'


아내는 뜬금없이 웬 외국어 전문가 과정이냐며 몇 마디하고는 끝이었다.

딱히 무슨 말을 기대한 것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책임질 테니 오빠 그거 하겠다고 해!"


같은 빈말을 기대한 것도 아닌데, 왠지 뭔가 허전하고 섭섭하다.

섭섭함의 대상이 아내라면 그냥 원망하고 말 일인데, 이번엔 그 대상이 내 처지인 것 같다.


당연한 건가.

부모 도움 없이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 자기계발은 과연 사치인가.


얼마 전 할아버지 제사에 모인 고모, 고모부 앞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쟤는 지구력이 없어. 테니스도 좀 배우다 말고. 운동이라고는 안 해."


혈기 왕성한 파이터 시절 나였다면 아마 이렇게 응수했으리라.


"운동할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해서 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9시나 돼서 저녁 먹고 나면 10시인데 그때 운동할 힘이 남아 있어야 말이지. 내가 좀 게으르거든 아빠."


은퇴 후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테니스를 3시간씩 치는 아빠는, 은퇴 전에도 교직 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에는 늘 테니스를 치셨다. 물론 내가 지금의 내 아이 만할 때도. 그때 난 할머니 댁에서 크고 있었지 아마?


부모님이 내 아이를 봐줘야 할 의무는 절대 없다.

그러나 정말 필요할 때, 긴급할 때

말하자면 외국어 전문가 과정의 기회가 내게 왔을 때

일주일에 단 몇 시간만이라도 맡길 양가 부모가 근처에 없다는 것은

망망대해에 의지할 것 없이 표류하는 느낌이다.


물 밑에서 죽어라 헤엄치면서 다리에 혹시나 쥐가 나면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느낌.


아이를 가졌을 때, 희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즈음 각오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다만, 그 희생이 딱 생각했던 수준만큼이었던 부모도 이 세상에 없을 게다.

아이가 핑계가 되고, 아이가 모든 문제의 원흉 취급을 받아선 안된다고 늘 마음을 다잡지만

아이가 없는 나의 삶을 계속 상상하고, 기회비용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없거나, 아이를 봐줄 누군가가 있는 다른 직원이 외국어 전문가 양성 과정을 듣겠지,

그리고 높은 확률로 해외 주재원이 되겠지.

그 시간에 나는 여기 남아 지금처럼 칼퇴와 육아 출근을 반복하 계속 이 망망대해에 떠 다닐까 봐

그게 가끔 소름 끼치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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