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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우 Feb 27. 2016

요리의 위로 <쿡방이 왜 대세일까?>

작문 스터디 #2015년 7월 5일 주제 : 요리

"설탕 한 컵 쏴아-" 굽슬거리는 머리카락에 동그란 얼굴. 쌍꺼풀 짙은 눈을 한껏 오므려 웃는 푸근한 아저씨의 이 말 한마디에 시청자들이 빵빵 터진다. 요즘 대세 <마이 리틀 텔레비전> 부동의 1위, 백종원 요리연구가의 유행어다. 이뿐인가. <냉장고를  부탁해>의 최현석 셰프가 한껏 멋 부린 포즈로 소금을 공중에서 폼나게 뿌리는 모습 또한 유행되었다. 각종 예능 프로의 게스트에 한 번쯤은 꼭 빠짐없이 요리사가 나와 활약하고, '식샤를 합시다', 곧 방영될 '심야식당' 등 드라마의 소재로도 요리가 등장했다. '요리 재미있잖아요.' '요리하는 남자는 섹시해요. 일명 요. 섹. 남!' 요즘 대중들은 요리에 열광한다.


왜 지금 대중들은 '요리'에 푹 빠지게 되었을까? 그 해답을 '만족'과 '대접'에서 찾았다. 요리하는 과정은 오감을 자극한다. 각양각색의 재료들이 눈앞에서 뒤섞이고, 볶아지고, 삶아지며 풍미 있는 색으로 변하며 '시각'을 충족하고, 음식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프라이팬이 가스레인지 후드에 긁히는 소리, 음식이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 그뿐인가 시식하는 사람이 '와작' 깨물며 씹는 소리는 '청각'을 충족한다. 또한, 완성된 요리를 바라보며 저것이 무슨 맛일지, 어떤 냄새가 날지, 씹는 식감은 어떨지, '미각', '후각', '촉각'을 상상으로 곤두세운다. 화면 속의 요리과정을 보며 우리는 '오감 만족'을 한다. 


또한, 화면에 가득 차 윤기를 발하고 있는 음식의 자태와 요리과정을 지켜보며 경험한 오감은 시청자인 우리가 그 요리를 충분히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요리는 필히 눈요기가 되고 배부름을 선사하며, 식탁 앞에 앉은 누군가에게 대접을 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하다. 요리의 본질적인 목적은 요리를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요리를 대접받을 사람을 위한 것이다. 목적의 타깃은 무의식적으로 지켜보는 시청자 본인이라고 설정이 된다. 대접받은 느낌 이후에는 어느 정도 요기한 듯한 든든함이 또 다시 만족이 될 것이다.


드라마의 갈등을 보며 답답해하며 마음 졸일 필요도 없다. 예능이나 개그 코너를 보며 억지 웃음 유발에 기가 찰 필요도 없다. 요리 프로가 대세인 현상은 지금 대중들이 갈등에 공감하며 슬퍼하고, 재미있는 개그 콩트를 보며 박장대소할 '여유'를 부리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불안과 불신의 시대. 취업과 결혼, 육아, 노후 등 삶의 기본적인 것이 충족되지 못하고, 자꾸 들려오는 사건과 사고 소식에서 정부와 사회를 비롯해 그 어떤 것에서도 해결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대중들은 깨달았다. 학생도 사회인도 저마다 아무리 열심히 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거려도 돌아오는 것은 노력에 비해 적다. 이 시대에 성공을 하려면 이미 성공한 상태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개인, 그리고 기업들이 누리고 있는 대접의 척도에서 드러난다.

기본적인 '만족'과 '대접'을 누리기 어려운 시대에, 그 해답과 위로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기본적인 '식' 즉, '요리'가 되었다.


배부름, 이것은 아주 단순하지만 필수 불가결한  '만족'일뿐더러 누구나 베풀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대접'이다. 대중들은 사회에서 기대할 수 없는 만족과 대접을 잠시나마 외면하고선 화면 속에 설탕이 듬뿍 담겨 분명 맛있을 음식을 통해 만족과 대접을 충분히 누린다.


하얀 요리사의 옷 그리고 하얀 설탕과 소금은 정갈하다. 이 밋밋하고 정갈한 것들이 활용된 '음식'은 형형색색 다채롭다. 흩어진 재료들은 평범하지만 이것들이 조화되어서 일개 토스트가 될 수도 있고 고급스러운 수프가 될 수도 있다. 각각의 재료의 맛들이 조화된 완성된 요리는 과연 어떤 맛일지에 대한 상상도 무궁무진하게 촉발된다. 한낱 계란일지라도, 한낱 설탕일지라도 각각의 재료는 제 역할을 하며 완성된 요리에 기여한다. 그 요리가 황금 마냥 대단치 않더라도 '우와'하고 탄성을 자아내고, 만족을 선사하고, 누군가를 위한 대접이 되고,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요리의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화면 앞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별거 없는 '나'도 어떤 제 역할을 하고 있을 테지, 작은 탄성이 자아질 무언가가 되겠지.'란 소소한 희망을,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배를 문지르는 여운처럼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씁쓸하고 퍽퍽한 시대의 대중들. 그 어떤 유머도 드라마도 시청자의 마음속에 파고들기 힘든 시기에, 대중의 마음을 풀어 헤친 해답은 뜻밖에도 달달한 '설탕 한 컵'. 즉, 삼시 세 끼 매일 여닫는 냉장고 속 재료들의 조합인 '요리'였다. 재미와 위로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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