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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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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시진 Mar 18. 2019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건




가족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초등학생 땐 이 질문에 대답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최소 20년간은 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주변에 많은 이들이 연애하고, 이별하고, 다시 연애하고, 결혼해도 '가족'에 초점을 맞춰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내가 연애를 해도 늘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나 보다.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니까.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라 새로운 보금자리를 가꾸는 두 사람. 그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고, 서로의 가족까지 하나로 품는다. 챙길 사람이 하나에서 배로 늘어나고, 둘 사이에 새로운 생명까지 태어난다.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 비로소 하나의 가족이 된다. 이 과정이 마냥 웃기기만 하지도 않아서인가, 가족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뭉클해진다.




미래의 '새언니'가 인사를 왔다


왜 이렇게 설레던지.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설레 보였다. 어떻게 옷을 입을까, 과하지 않으면서 괜찮은 선물은 뭐가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많은 질문들에 적당한 답을 찾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날이 찾아왔다.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오빠와 언니를 만나기 전, 꽃 한 다발을 준비했다. 나름의 '환영'이었다. 우리는 이제 같은 가족이 될 준비를 하는 거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제대로 전달됐으려나, 아무튼 나는 꽃 선물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옷감으로 따지면 실크소재라는 '리시안셔스' 언니로부터 오빠에게 전달받은 사진




얼마나 긴장되고 불편했을까. 새로운 가족이라는 생각 전에, '시'가 붙는 식구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를 체험했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뜨는 순간에도, 언니는 음식을 제대로 씹기나 할까 싶었다. 내가 너무 친하게 굴어도, 너무 거리를 두어도 불편할 텐데. 그 중간을 찾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해볼 테다. 나도 머지않아 비슷한 자리를 겪게 될 것 같다.




결정적인 이유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 결정적인 이유는 오빠의 낯선 모습을 봐서였다. 우린 둘 밖에 없는 남매인데, 나는 오빠가 하는 건 뭐든 다 따라 하던 귀찮은 여동생이었다. 어릴 땐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오빠가 뭐가 그리 반가웠는지 달려 나가 안고 울기도 했었다. 아마 내가 9살이었을 거다. 오빠가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다녀온 그 날이었으니까. 그래, 진짜 그랬었다. 왜 그랬을까. 아직도 의문인데, 엉엉 울었었다. 지금 생각하니 웃기군.


사실은 나보다 오빠가 착했다. 욕심 많은 나에게 늘 양보하며 챙겨주곤 했으니까. 내 성격의 8할은 오빠의 영향인 것 같다. 요즘 들어 형제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오빠도 내가 있어서 의지가 되려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오빠의 결혼을 상상하니, 가족이 갖는 의미가 크게 와 닿았다. 정장을 갖춰 입고 엄마 아빠를 맞이하는 모습이라니. 순간 부모님께 빙의해서, 자식의 결혼을 바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마음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아직 나는 멀었다.



지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에게 부모님은 늘 정답 같은 존재였고, 오빠는 내가 걸어갈 길을 먼저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이젠 오빠가 아들이나 오빠가 아닌 다른 역할이 늘어났다는 게 실감 났다. 물론 힘들겠지만, 잘 해낼 거다.




"사진 하나만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차 한잔을 할까 싶어 내려간 곳에서는 이미 생일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르신의 생일파티였나 보다. 그래, 우리가 간 식당은 상견례, 가족 모임으로 아주 제격인 식당이었다. 미처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탓에 조금은 불편한 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뭐 어떠랴. 다른 가족들은 저렇게 지내는구나, 보기 좋다 싶었다. 다른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며 오빠와 남매 케미를 보여주었다. 언니는 멀리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도 곧 저 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추억하지 못하는 기억일지라도 사진은 아니다.


3월 16일, 날씨가 유난히 화창했던 그날. 그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더 환하게 웃을 걸. 방정맞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역사에 남을 거야.' 언니와 오빠의 대화를 엿들었다. 꼭, 다음번엔 내가 카메라를 챙겨 와야겠다.




오래 된 이야기


먼지 쌓인 짐들을 하나 둘 치우고, 오빠 방을 깔끔하게 정돈했다. 그래도 멀리서 왔는데, 고향에 왔는데, 집에 들어가서 다과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준비를 했다.


아버지는 옛날이 기억나는 듯 하나 둘 이야기를 꺼냈다.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이셨을 테다.


어떤 마음일까, 언니가 돌아가고 난 뒤에 오빠 침대에 걸터앉아 방을 둘러보는 아버지의 표정에 많은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 침대도 10년은 된 것 같다. 우리 집은 정말 물건을 오래 쓴다.



'언제 이렇게 훌쩍 컸을까.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내가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는 만큼, 우리 부모님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자식들의 결혼이 가까워져 오니 부모님이 처음 만나 가족이 되었던 때가 떠오르셨나 보다.


묵은 세월의 때를 벗기고 젊은 아빠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나를 만나리라는 건 꿈에도 몰랐겠지. 나와 가족이 되어 고맙다. 늘 부족하지만, 우리 모두 부족하니까 서로 채워주면 좋겠다.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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