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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Apr 26. 2024

무제

남편 말로는 내가 '고립'된 삶을 원했다고 한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근데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했을 말이긴 하다.


이 집은 내가 원했던 '고립된 삶'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1. 주위에 날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2. 매우 고요해서 거의 적적할 정도다.

3. 고령인구가 많다.

4. 집 근처 공원이 있다.


오늘 아침에도 9시 조금 넘어 커피를 들고 강아지 산책에 나섰다.

계속 똑같은 벤치에 앉아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읽는다. 몇 장 못 읽고 일어난다.

강아지가 보채기 때문이다.


11시쯤 집에 와서 강아지 목욕 시키고 나도 씻고나면 오늘의 첫끼를 먹을 시간이다.

오늘은 하루야채를 샐러드로 먹고 새송이버섯볶음을 만들어 밥이랑 먹었다.


원래 버섯을 2개 반을 쓰려다가 너무 양이 많아보여서 1개 반만 했다.

남은 것은 남편에게 주기 위해 반찬 통에 담아두었다.


남편은 어제 퇴근하고 집에 오니 거의 7시 40분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회사와 집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어진 것이다.

오자마자 내가 만든 밥을 먹고 스탠드에 끼울 전구랑 빨래건조대를 사러 철물점에 갔다가 돌아왔다.

설거지하고 스탠드 설치하고 집안일만 하다가 11시쯤 내 옆에서 코를 골면서 잠들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하며 나머지 반나절을 보내야할까?

어제는 오후에 또 낙산공원에 가서 걸었고 15000보 정도 채웠다.

길치라서 잘못 길을 틀어 한성대 근처까지 갔다왔다.


바로 3월까지 계속 카톡으로 이야기하던 전전 회사 사람들은 모두 퇴사 상태다.

한명은 시험 준비, 한명은 곧 호주로 워홀을 간다.

그래서 카톡은 거의 안 한다. 각자의 새로운 삶을 살아나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종로구에 와서 살게될 줄은 전혀 몰랐다.

높은 언덕배기 위로 넘어가면 보문역 근처인데 그곳은 완전히 부촌이다.

내가 사는 곳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어차피 운전을 못해서 나는 이렇게 집 주변만 배회하는 삶을 당분간 살게 될 듯하다.

그게 내가 원한 삶이긴 하다.

그렇긴하지만 이제 슬슬 일이 다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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