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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Feb 09. 2020

판타지를 보고 현타가 오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술을 좋아하는 나의 알콜성 치매 초기 증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명징함과 시간의 흐름의 상관관계에 대한 그래프는 증감의 규칙성을 잃고 들쑥날쑥 제 마음대로다. 오래전 일이 어제 일인 듯 뚜렷이 기억나고 최근의 일이 오히려 기억해 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기억이란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라서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일수록 명징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오래전 눈 내리던 밤 그와 함께 걸었던 골목길의 가로등이, 그 가로등 불빛 사이로 보이던 그의 붉은 볼이, 그 볼이 더 붉어지며 내 어깨를 감싼 그의 손에서 느껴지던 긴장감이, 그리고 어쩔 줄 몰라 떨리던 내 마음이 더 오래도록 구체적으로 기억된다.


나는 나의 삼십 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계획적인 대출과 임신은 재앙이라고 했던가? 구체적인 임신 계획 없이 큰 아이와 여섯 살 터울의 작은 아이를 낳고 한참 유행하던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흘러나오면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정말 노바디가 되는 건가 좌절했던 나, 모유수유용 원피스에 내복 바지, 수면양말을 신고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로 택배를 받으면서 택배기사에게 비칠 나의 거지 같은 모습이 창피하던 나, 두 아이를 모두 재우고 늦은 시간, 이제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구나 기쁜 나머지 잠들기 싫어서 수면부족으로 푸석한 얼굴로 전쟁 같은 아침을 맞았던 나. 띄엄띄엄 기억에 떠오르는 삼십 대의 나는 즐겁지 않았다. 하루에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단 십 분도 없었다. 내가 기쁘지 않으니 남편에게 다정한 아내가 되지 못했고 아이들에게도 친절한 엄마가 될 수 없었다. 분명 나는 지금보다 젊고 예뻤을 텐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벌써 잊고 싶어서 기억에서 지운 모양이다. 그래서 삼십 대에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없다. 즐겁지 않았으니까,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출산과 육아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 계획 없이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라 여겼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잘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를 기르는 것이니 그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실제는 나의 아름다운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으며 연습한 라마즈 호흡이며 출산을 위해 내가 준비한 그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다. 아이가 임신 마지막 달까지 거꾸로 자리 잡고 있는 바람에 출산은 제왕절개로 끝났고 육아는 매일같이 결심과 좌절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과 위로의 반복이었다. 온 세상이 나를 향해 몰래카메라를 하는 듯한 배신감을 느꼈다.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어? 이렇게 힘들 거라고!" 베란다 창을 열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잘 사니까 나도 잘해 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육아는 매일매일 힘들었고 그 힘듦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으며 또 매일매일 새삼스러웠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큰 아이가 이제 다섯 살이 되어 손이 덜 가고 나도 이제 내 아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가 있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키즈카페에 몰아넣고 두 손을 모두 사용하며 식사할 수 있을 즈음에 둘째를 임신했다. 그리고 깊이 좌절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의 처음은 어디일까? 내 인생이 이 상황으로 수렴되는 그 처음은 어디였을까? 기억의 시간을 거슬러 가보니 그 모든 처음은 눈 내리는 날 밤 가로등 아래였다. 내 어깨를 감싼 그와 어쩔 줄 모르던 나였다. 그래서 더 깊이 좌절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또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니, 나는 다시 그와 불같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 힘겨운 나의 출산과 육아와 그래서 괴로웠던 나의 삼십대는 이미 눈내리는 밤 가로등 아래에서 결정되었던 것이였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헤어진 후 이별의 아픔을 견딜 수 없어 그녀와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설명할 수 없는 필연에 의해 다시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깊은 겨울밤 숲 속 꽝꽝 언 호수 위에 누워 별을 바라보는 두 사람.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더라면 아무리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기억을 삭제당한다 하더라도 나와 함께 호수에 누워 그 겨울밤 별을 바라봤던 그를 만난다면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그 장면이 아름다워서.


연애와 결혼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도 마찬가지 인 듯하다. 내가 그와 목하 열애 중이었을 때 이 영화를 봤더라면 "그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야!"라고 로맨틱한 결론에 도달했겠지만 결혼과 출산 그리고 전쟁 같은 육아를 지나온 후 이 영화를 보니 좌절된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면 그 이후의 힘든 시간 역시 예정되어 있어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 테니, 그를 사랑했던 나는 삼십 대를 새삼스럽게 매일이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청춘의 뜨거웠던 사랑이 전쟁같은 출산과 육아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청춘의 뜨겁고 순수했던 사랑만을 기억하고 싶어서 나의 삼십 대, 출산과 육아의 시간을 자체적으로 기억에서 지웠나 보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곧장 다시 첫 장면을 보고 싶을 만큼 인상 깊고 감독의 상상력이 돋보였던 영화였다. 과장되고 코믹한 연기로만 기억되었던 짐 캐리의 진지한 연기가 조엘로 분하기에 맞춤한 듯 자연스러웠고, 믿고 보는 배우 케이트 윈슬렛의 앳된 얼굴이 사랑스러운 영화 "이터널 선샤인".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을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하고, 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아줌마가 되어 하필 나는 이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좌절한다. 내 사랑이 판타지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면 내 구질구질하고 전쟁같이 힘겨웠던 현실의 삶은 판타지로는 설명되지 않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서 나는 판타지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현타가 온다. 그래서 뭔가 무척 억울하다. 아름다웠던 내 사랑이 구질구질한 현실의 시작이었다고 인정하기 싫어서 땡깡을 부리고 싶다. 아름다운 판타지를 보면서 너무 아름답고 부러워서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억지 부리는 땡깡.


아! 몹시 술이 당기는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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