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아기에게 하는 말? 나에게 하는 말!
“그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어?”
“벌써 숫자를 다 아네?”
“어쩜 이렇게 말을 잘 하니”
“얘는 한두살 많은 애들이랑 더 잘 노는 것 같아.”
“내 딸이어서가 아니라 진짜 좀 대단한 것 같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수 있는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유치원 재롱잔치에 구경을 갔다. 동생은 영어 뮤지컬의 주연이었다. 쬐끄만 동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노래를 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그보다 더 어릴 때였다. 내가 훌라후프 돌리는 것을 보고 동생도 하고 싶어 했다. 그 어린아이에게 가능할리 없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훌라후프를 다시 주워 올려 돌려보는 것을 무한반복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아침부터 일어나 연습을 하고 있다. 결국 성공했다. 난엄마도 아니면서 내 동생이 천재이자 끈기까지 있는 대단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점이 없어도 괜찮아. 뛰어난 면이 없어도 괜찮아. 너는 늘 사랑스러울테니까. 네 삶 전체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꿈을 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배를 어루만지며 꿈꿈이에게 몇 차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아이에게 뛰어난 면이 보이지 않아도 속상해하지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혼자 했다. 그러다 문득 특별할 수 있는 이 아이에게 내가 괜한 주문을 걸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말 때문에 대단할뻔 한 아이가 평범하게 태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스쳤다. 그러다 알았다. 어릴 적 나에게 해주고 싶은말이었다.
실제로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는 모르겠다. 부모님 증언에 의하면 돌 때 말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주변을 보니 돌잔치에 말을 하는 아기는 거의 없었다. 이제서야 내가 특별한 돌쟁이였겠구나하는 생각은 든다. 두살 터울의 여동생은 세돌 때까지 말을 안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동생이 나보다 훨씬 말을 잘한다. 한살 때는 기억 나지 않으니 기억 이후의 나는 내내 특별할 것이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였나보다. 뱃속에 나의 아기가 생긴 이후 주변의 자식자랑을 듣는 것이 불편했다. 꿈꿈이 때문인줄 알았는데 나 때문이었다. 자랑거리가 없던 내 어린시절이 안쓰러워서였던 것 같다. 그 마음이 아직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줄지 모르는 우리 아기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아니 아기를 바라보는 나를 걱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복잡한 감정과 생각의 출발지점을 찾았다. 다행이다. 아기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에 내 어린 시절이 끼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일이다. 하지만 그 끼어듬의 순간을 알아차릴수 있는 엄마로 살고 싶다. 미리부터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있는 엄마도 다른 아이들의 자랑듣기를 불편해하는 엄마도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다.
어른이 되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본다. 뛰어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 있다. 학창시절에는있는듯 없는듯 했지만 지금은 뚜렷한 자기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있다. 계속 뛰어나거나 변화없이 밋밋한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꿈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그녀의 삶 전체를 지켜보고 지지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의 행복에 힘껏 박수쳐주는 엄마. 방황의 순간이 와도 조급해하지 않고 뚝심있게 버텨주는 엄마로 있어주고 싶다.
꿈꿈이에게 다시 얘기한다. 너에게 관심을 많이 갖는 엄마가 될게. 네 존재 자체를 자세히 살펴보고기뻐하는 엄마가 될게. 네가 원하는 삶을 찾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