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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Mar 31. 2016

혼자인듯 둘이서 하는 여행

임신부 혼자 여행하기

도로를 달리다 마을로 꺾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갔다.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한다. 집앞에 차 들이 몇 대 세워져 있다. 이 곳이 맞는 것 같다. 차에서 내렸다. 하얀집이 단정하다. 녹색 대문이 작고 낮다. 나무 팻말에 지니코티지라고 써 있다. 첫 숙소에 도착했다. 마당 안 쪽 화단에서 큰 개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예약했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했다. 사장님이 마중을 나왔다. 잘생긴 하얀 개는 집안까지 따라 들어와 손님인 나를 반겼다. 개를 무서워하는 것이 미안해진다. 또또는 착했다. 사장님 부부에게 몇 번 주의를 듣고서 내 옆을 서성일뿐 더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갔다. 창문이 두개였다. 초록잔디와 검은 돌담 주황색 지붕 그리고 다시 초록 나무와 하늘이 보이는 창문이다. 큰 창문 하나는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제주에 올때면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묵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바다 산책을 하고싶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여러 밤을 머물 수 있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마을 속에 있는 이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자다가도 파도소리를 듣고 눈 뜨자마자 바다를 봐야 제주에 왔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는 돌담 아래 핀 꽃을 구경하며 산책할 때 자다 깨서 창문으로 돌담 넘어 먼 오름 위로 해가 뜰 때 제주를 느꼈다. 바다가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마당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 그네의자 캠핑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그네의자와 캠핑의자를 오가며 앉아 있었다. 가득 깔려있는 잔디 위 여백이 많은 마당은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늑했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모기가 많아 오래 앉아있지 못했지만 하루종일 앉아있고 싶은 마당이었다. 사장님 부부는 수줍고 착해보였다. 이 곳의 규칙은 조식시간과 퇴실시간 그리고 실내 금연 정도가 전부였다. 그 곳의 공간과 최소한의 규칙과 어울리는 분들이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숙소를 나서고 돌아올 때 반겨주는 것만으로 따뜻했다.


 첫날 밤에는 비가 왔다. 침대 옆 창문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불 켜둔 방이 밖에서 보일것 같은데 커튼을 내리기 싫다. 불을 끄고 누웠다. 빗소기가 더 크게 들린다. 비가 들이칠 것 같다. 창문을 손가락 한마디정도만 남기고 닫았다. 다 닫아 빗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다. 번개도 친다. 움찔했다. 다시눈을 감는다. 빗소리가 들린다. 웃음이 난다.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은 채 바로 잠이 들었다.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6시다. 멀리에서 해가 뜨고 있다. 하늘이 붉다. 해가 질때와 뜰 때 하늘의 색이 비슷한 것 같다. 침대에서 그대로 두 시간을 뒹굴거렸다. 점점 하얀 빛이 들어온다. 이불을 걷었다. 배를 햇살에 비춰주었다. 배를 쓰다듬는 손이 빛을 받아 예뻐보였다. 꿈꿈이가 뱃 속에서 몸전체를 움직인다. 빛을 즐기며 수영을 하나보다. 집에 있을때에도 휴일에 일찍 깨는 편인데 이렇게 한참을 뒹굴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거실로 나가게 되고 티비를 켜게 된다. 창문이 두개 있는 방. 이 제한된 공간이 나에게 여유를 준다. 8시가 넘도록 뒹굴거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더 높이 뜬 해가 내 얼굴을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어제 밤에도 잠시 걸으려 했었다. 옆집 개가 너무 크게 짖어 무서워 금세 다시 돌아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살살 걸었다. 살짝 긴장도 됐다. 다행히 개는 짖지 않았다. 그 집을 지나치고 나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청귤 나무가 돌담을 넘어서고 있었다. 넓은밭에는 초록의 농작물이 가득했다. 꿈꿈이가 움직인다. 배를 만져주었다.


"이게 엄마가 좋아하는 제주의 색깔들이야"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태동을 아는 척하기가 쉽지 않다. 미안하지만 조금 불편하게 여긴 적도 있었다. 급하게 메일을 보내야할 때 헷갈리지 않도록 집중해서 작업할 일이 있을 때 아기가 움직이면 배를 약간 누르면서 모니터를 쳐다봤다. 만져주는 것이 아니라 잠깐만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그랬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오늘 너무 바빠서 아는 척을 잘 못해서 미안해" 집에 갈 때 아기에게 말하곤 했다.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 아기가 움직이면 만져주며 고맙다고 했었다. 소소하게 느끼던 미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크게 소중함이 다가왔다. 제주에서 아기와 둘이 머무는 시간동안은 아기가 움직일때마다 반응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시간은소중한 의미가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두번째 아침에 이미 알아버렸다. 하루종일 함께 다녔다. 재미있었는지 그날 밤에는 너무 많이 움직여서 잠을 설쳤다. 꿈꿈이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나보다. 자주 아는 척 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 이 곳에서 더 가까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았다.


+ 2015. 9월 나홀로 태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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