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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May 13. 2021

거짓말이 좋아.

세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언어들에 대하여.

   타인의 마음을 알아채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하지 않던가? 상호 신뢰 하에 이야기하는 거라면 모르겠다만, 우린 다양한 이유로 진심을 가린다. 겸연쩍은 미소처럼 어스름하게. 보일락 말락 숨겨놓는다. 다른 말로 포장한다거나 거짓말로 감싸지. 음험하다거나 흉계 같은 부류일 수도, 낯부끄러워서라던가 상대를 배려한단 핑계일 수도 있다. 결국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저마다 암호 해독 장치를 귀에 끼고 살아가야 한다. 눈치라던가 공감 능력 같은  말이다.  


   사투리 단어인 ‘거시기’ 하나만으로 모든 대화가 통한단 우스갯소리가 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그저 농으로만 끝나지 않는 얘기일 수 있겠다.


   2021 5 8. 이번 어버이날엔 본가로 내려갈 작정이. 어버이  찾아간  족히 칠팔 년은 됨직하다. 독립해 살다 보니, 그것도  멀리 나왔다 보니. 집에 가는  조차  맘먹어야 하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탓이다. , 추석을 제하면 많아야  년에 한두  남짓? 무심하다 욕먹어도   없겠으나 여태껏 그러고 살아왔으니 어쩔 방도가 없다. 또한, 짧다면 짧고 길다면  네댓 시간의 이동 거리는 동네 마실처럼 결정할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위의 사실과는 별개로, 이번 귀향에  거창한 이유를 붙일  없었다. 그냥 많이 지쳤더래서. 역대급으로 회사 일이 너무 힘들고 벅차서.  달간 영혼까지 갈아 넣는 와중에 다행히 방점은 어찌어찌 찍어놓았고, 하루 이틀 휴가  짬이 드디어 생겨서. 어버이 날의 효도보단 본인 생존을 위해 도망치듯 쉬다 오려는 심산이었다.  


집에서 쉬고 싶어서.

    맘먹고 목요일 반차, 금요일 연차를 내고 다녀올 참이었다. 근데 어린이날에 만났던 여자 친구가 덜컥 목이 칼칼하단다. 남자 친구는 세상 멀쩡해서 아마   없을  같긴 하다만. 요즘 같은 때는 더더욱 조심하는  맞을 테니 하루 정돈 집에서 대기하며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부모님께서도 요새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편한 대로 하라시네. 결국 상황 좀 보다 하루 늦게 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목금토 일정이었으나 늦어진 만큼 금토일까지 있어볼 작정이었다. 근데 대뜸 부모님께선 그래도 하루 쉬다 출근하라고 토요일 오후에 올라가란다.   괜찮다 하는데도 한사코 가란다. 원래 본인 화법  두세  거절당하면  이상 묻지 는 편이라서. 아울러 여태껏 알고 있다 생각했던 부모님 역시 대체로 직설 화법을 구사하셨기 때문에. 구태여 재확인할 필요 없겠지. 혹시나 진심으로 귀찮아 그러실 수도 있지 않겠는가? 눈치 없이 행동하지 기로 했다.


   런데 토요일 오전, 주말의 여유를 즐기며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슬며시 다가오신다. 별생각 없이 당신을 멀뚱히 쳐다보는데, 속삭이듯 말을 건네고 가신다. 막상 오늘 가기로 하니 어머니께서 서운해하시더란다. 아차 싶었다기 보단 그럴  있겠다 싶었다. 그럼 그럼. 그럴  있고 말고. 막상 얼른 가라 큰소리치셨다만, 아쉬우실  있지. 결국 상황을 지켜보다 ‘다음날 아침에 올라가련다 선언해버렸. 런데  순간, 세상 해맑게 웃으시는 소녀의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 역시 사람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란 어렵구나. 우리 부모님만큼은 그러지 않으실  알았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풍부한 색채.


   ‘거짓말의 발명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  인류는 ‘거짓말이란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두가 지나치리만큼 솔직하다. 덕분에 못생기고 능력 범한 주인공은 늘 상처투성이다. 데이트를 해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거절당하기 일쑤다. 사회적 직위라던가 유전자 등등 핑곗거리도  많지. 그러던 어느 , 주인공은 은행 창구 앞에서 아주 우연한 계기로 거짓말을 해내 통장 잔고보다 많은 돈을 인출해낸다. 인류 최초 거짓말이었다. 유레카!!! 그의 삶은  번째 거짓말을 기점으로 백팔십도 뒤바뀐다.  이상의 소개는 스포일러와 다름없어 참겠다만, 영화를 처음 보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떨   솔직한 심정 듣고 싶어 답답해질 때도 있다만, 결국 포장된 언어를 받아 드는 쪽이  잔인하겠단 점이다. ‘ 사람은 솔직하지 않은가?’ 문하지만, ‘솔직한 쪽보단 내가 찰떡같이 알아듣는 쪽이 여러모로 낫겠다라고  결론짓는단 말이지.


   포장된 언어와 거짓말이 세상의 색채를 풍부하게 드니까 


   일요일 아침, 다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푹 쉬었다. 그 와중에 이런저런 밑반찬을 싸주 바리바리 차에 싣고 돌아왔다. 여독에 노곤해하며 잠깐   붙이고 일어나니 이미 점심시간이 저만치 흘렀다. 스멀스멀 침대 밖으로 나와 밥을 짓고 반찬 봉지를 꺼내 들었다. 아이참. 단단히 묶어 놓으셨더라. 손톱이 아플 지경이다. 그냥 가위로 잘라버리려다 굳이 낑낑대며 하나하나 풀어냈다. 이만치 꽁꽁 싸맨 매듭에서도 당신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괜스레 그런 기분이라서.  따스함을 잘라내긴 싫었다. 흘러가는 주말 오후,  이렇게   유난을 떨어보았다.


비언어적 속삭임.


   타인의 마음을 열어보기란 어렵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어려운 일이지. 그래도 말이다. 갓 지은 밥에 올린 나물 한 점, 멸치 볶음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알아채는 일을 위해서라면. 마음을 열어젖혀 보기보단 이쪽이 적당히 알아먹는 쪽이 훨씬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 속에 살기보단 그냥 내가 좀 더 센스 있고 똑똑해지는 쪽이 낫겠다 싶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상대의 마음이나, 말하지 않더라도 뭉근히 알아채 주길 바라는 욕심 또한 일상  바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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