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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ul 01. 2021

속물의 바다

속물의 껍데기를 벗을 수 있을까?

   ‘껍데기는 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그러게. 껍데기는 가야 하는 쪽이 맞는데. 알맹이가 세상 중요한데. 이 불초한 소생은 껍데기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탈이다. 단언컨대 속물이다. 물욕 많은 소비 요정이지. 세상 이쁘고 귀여운 건 가져야 한다. 통장이 '텅장'될 만큼 질러대기엔 마음속 브레이크가 많지만. 좋아하는 브랜드 정돈 꿰고 산다. 같은 물건이래도 가격은 천차만별일 수 있는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지.  


   대체 이십 대의 생애를 어찌 지나쳐 왔길래 이러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십 대 때는 자본의 시커먼 속을 혐오하던 중2병이 확실했는데. 눈떠보니 욕망 덩어리 삼십대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돈으로 살 수없는 무형의 자산도 참 중요하다만,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도 너무 짜릿하단 걸 느껴버린 이번 삶은 영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뭐 근데 어찌하랴. 그냥 그러려니 살아가야지.


   그래도 말이다. 무작정 비싼 물건이라 혈안이 되는 건 아니다. 세간의 평가와 본인의 가치가 맞물려 좋아하게 된 브랜드가 몇 가지 있을 뿐이다. 그중 하나가 '이솝'이란 화장품 브랜드다. Aesop. 좋은 향과 미적 감각을 추구하는 회사. 아름다운 상품 디자인과 공간, 오감을 만족시키는 구매 경험까지. 좋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쪽은 ‘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향수라던가 핸드크림, 데오도란트, 손 세정제 등등 몇 가지 제품을 통해 신세 지고 있다.


   물건의 가격은 무엇으로 매겨질까? 보통은 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라 판매자가 매긴 금액이 가격으로 책정된다. 하지만 그 '가치'는 구매자가 결정한다. 가치란  본인에게 필요하다는 인식과 금액을 지불하겠단 의지로부터 파생하는 거니까. 제품이 갖고 있는 본연의 의미 혹은 브랜드 이미지라던가 이를 썼을 때 풍부해지는 마음, 만족감 등등. 값비싼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기에 지갑이 열리는 거다.


가치있는 시간.


   물론 단돈 몇 천 원짜리 비누가 나쁘단 소리는 아니다. 절대 아니지. 그는 '비누' 본질 그 자체에 충실한 거니까. 그런 걸 폄하하면서 비싼 물건을 좋아한다면, 이는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무지에 불과하다. 몇만 원짜리 물건을 몇 천 원짜리 사듯 살 수 있는 부자라면 애초에 다른 얘기이겠으나, 최소한 소시민적 속물로써의 소비 철학 하에서는 그렇다.


   지금 시간은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오후. 이런 날엔 역시 근교 카페가 제맛이다. 산 밑에서 맡는 비 냄새가 좋네. 사람도 너무 많지 않고 커피와 몽블랑도 나쁘지 않았으며 적당히 대화를 나누기에도 글쓰기에도 좋은 환경이라서. 이렇게 흘러가는 오후가 좋다. 그런데 심지어. 문득 찾아 들어간 화장실에서 뜻밖의 너와 조우하는 호사까지 누렸다.


   뜬금없이 세면대에 놓여있는 이솝 손세정제. 요새 갈색 병을 따라한 디자인이 많긴 하다만, 저건 틀림없이 진짜다. 고개를 숙여 응시해본다. 역시나 제대로 보았다. 안 그래도 기분 좋은 오후였는데. 사장님 취향에 건배를.  


상쾌한 기분이지만.


   하지만 말이다. 문 앞에 먹음직스러운 치즈가 떨구어져 있다면 생쥐 된 도리로써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저건 덫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음 한 편에서 의구심이란 뱀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사실 학습에 의한 결과다. 십중팔구 그래 왔으니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는 아닐 게다. 막상 저 펌프를 눌러보면 나오는 내용물은 기대하던 것과 다를 때가 많았으니까. 장사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커피를 많이 판다 한들 화장실 비누로 이솝을 들여놓기란 어려운 결정이니까.


   그렇기에 이번 역시 큰 기대를 품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복권 긁는 손놀림으로 펌프를 눌러본다. 생쥐는 찍찍.


   흠. 역시나 꽝이네. 이솝에는 핸드 워시 종류가 몇 가지 되지 않을뿐더러 특유의 향 계열이 있어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즉, 꽝이 확실하단 소리다. 하지만 뭐 원래 복권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당첨될 거란 설렘을 돈 주고 사는 거지.  


   속물로 살아가는 생애에서. 오늘처럼 겉과 속이 다를 땐 씁쓸하다. 어찌 보면 사기와 별반 다를 게 없거든. 브랜드 이미지를 원하면 제대로 갖다 놓던가. 그게 아니면 그냥 원래 물비누 병을 갖다 놓던가. 혹은 가성비 좋은 녀석을 열심히 찾아 본인이 생각하는 가게 분위기에 맞추던가. 근데 저게 뭐람. 공병만 브랜드요, 내용물은 정체모를 무언가를 채워놓는다면 값싸게 브랜드 가치만 뽑아먹겠단 말 아닌가?  


   물론 사장님의 자유권을 침해할 마음은 없지만. 솔직히 저 같은 속물보다 더 속물로 보이십니다.  


   근데 한편으론 또 나 홀로 송곳니를 드러내고 사는 기분이다. 고의든 아니든 간에. 본인의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할 순 없으니 말이다. 사장님의 의도가 뭐였든 남에게 피해 주는 일만 아니라면, 이쪽이 뭐라 할 수 없으니까. 커피 한 잔에 지불한 값에 핸드 워시 비용이 암묵적으로 ‘부대 비용’이란 항목으로 책정되어 있겠으나. 당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이쪽 명세서를 들이밀 순 없겠지.  


   당장 지금만 해도 작금의 상황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자니 살짝 민망하다. 화장실에서 발생한 분노를 씩씩거리며 글로써 해소하고 있긴 한데. 뭔가 송곳니가 간질간질하다. 막상 글로 써보고 있자니 사실 이렇게 열낼 소재도 아닌 기분이라서. 그리고 일기도 아니고 시사고발도 아니며 에세이도 아닌 뭔가 모를 문장들이 써지고 있어서 말이다. 그새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모양이다. 그래 , 손만  닦이면 되지 . 그래 그게 뭐라고. 껍데기를 좋아하는 성정 탓에  좋은   이러고 있던 본인 탓이지.


바다와 같은 마음이 되고싶다.


   그러게. 껍데기는 가야 하는데. 가는 게 맞는데.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구태여 붙잡고 사는 이 생애는 어찌해야 하나. 괜한 순간에 시비 거는 본인의 취향 탓을 해야 하는 건지 껍데기를 종용하는 이 시대의 시선이 잘못되었다 투정 부려야 하는 건지. 그래도 글 쓸 거리가 늘 부족한 평범한 소시민으로써는 감사한 마음을 품어야겠다. 속물로 사는 일상 덕에 그냥 지나칠 일도 소재 삼아 글 한 줄 더 써보니까. 껍데기도 가치도 사장님도 이솝도 모를, 소소한 오늘의 이야기 말이다.


이너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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