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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May 02. 2022

얼마나 질러야 질리도록 마실까?

커피로 취미생활(3) - 커피로 행복해지려면 얼마나 투자해야 할까요?

   첫 문장치곤 뜬금없지만, 저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을 존경합니다. 몇 개의 단어로 몇 천 줄의 문장을 함축하는 시인들이니깐요. 왜, 그렇지 않나요? 기업이나 브랜드의 슬로건은 소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브랜드 철학을 한 문장에 담아내는 일은 정말 잘 쓰인 시와 같으니깐요. 나이키의 ‘Just do it‘ 이나 애플이 스티브 잡스 생전에 밀었던 ‘Think different’ 같은 거죠. 가장 최근 감명받았던 슬로건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디 에디트, 또는 ‘까탈로그’로  알려진 큐레이션 사이트이네요. 사는 (Live) 재미가 없으면 사는 (Buy) 재미라도. 이 얼마나 유려하게 압축된 문장입니까?  


   좋은 문장은 음미하고 입에 머금어보게 됩니다. 다양한 향기와 맛을 지니고 있으니깐요. 커피도 비슷합니다. 저마다 다양한 맛과 향을 원두 속에 꽁꽁 숨겨놓습니다. 내려 마시는 사람이 살살 달래어가며 문장을 풀어헤치면 가슴에 닿는 언저리에 앉아 음미하게 되곤 하죠. 원두를 고르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도구와 방식과 방법을 정합니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면 커피로 향하는 여정은 언제나 즐겁고 설렙니다. 그래서 이 길을, 방향을 향해 첫 발을 내딛으려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짤막한 매뉴얼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Q. 커피는 어떻게 마시나요? 어떤 원두를 고르면 좋나요? 

   보통 커피 음미 방식은 세 단계로 나뉩니다. 코에 닿는 향, 입에 들어갔을 때의 맛, 넘기고 났을 때의 잔향이에요. 자세히 말하면 직접 원두를 가는 경우라면 갈린 원두 향을 맡는 단계가 하나 더 있지만 보통은 코에서 느껴지는 '아로마', 입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노즈', 넘기고 난 뒤 입 안과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애프터 테이스트'로 말이죠. 커피 한 잔에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맛과 향이 있는데 보통 원두를 사면 포장지에 '테이스트 노트'라는 라벨이 있습니다. 초콜릿이라거나 과일, 견과류 등등. 그 커피에서 느껴질 수 있는 장르를 미리 마셔본 사람들의 리뷰처럼 적어놓는 겁니다. 그러면 저 역시 정말 그런 느낌을 찾을 수 있는지. 미뢰에 집중하여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찬찬히 느껴보는 겁니다.  


어떤 원두를 고르는가?  


   결국 이 질문은 테이스트 노트와 연관이 있습니다. 요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 ‘어떤 원두를 고르시겠어요?’란 피드백이 돌아오는 경우를 종종 만납니다. 여기서부터예요.  크게 보면 커피를 마시는 방식, 또는 본인이 좋아하는 커피나 원두를 고르는 방법의 첫 관문이죠. 둘이 뭐가 다르냐 물으면 대개 산미가 있냐 없냐로 시작합니다. 커피를 그저 쓴 맛으로만 인지하는 경우도 많은데, 굳이 커피 맛을 두 가지로 나누자면 산미가 있냐 바디감이 있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산미는 신 맛, 바디감은 쓴 맛으로 보면 됩니다. 둘 중 한쪽이 좀 더 강한 맛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때 신맛과 쓴맛 둘 다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밸런스가 좋은 원두 혹은 여러 품종을 섞은 블랜딩 원두가 아니고서는 어느 한쪽이 우세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둘 다 강렬해진다면 보통은 부럽다고 표현하게 됩니다.  


   테이스트 노트를 보았을 때 과일이나 꽃 계열로 표현된다면 산미가 있는 커피, 초콜릿이나 캐러멜, 견과류 계열로 표현된다면 바디감이 있는 커피로 구분됩니다. 어느 원두가 더 좋냐는 없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입니다. 되려 비싼 원두일수록 좋게 말하면 복합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맛이 날 수 있어요. 매니악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냥 본인이 더 좋아하는 쪽이나 궁금한 맛으로 골라가면 됩니다.  


   원두 산지에 따라서도 대체적인 맛을 가늠해볼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맞는 건 아니지만 에티오피아는 산미, 케냐는 약간 바디감 쪽이 많은 편입니다. 남미는 밸런스가 좋거나 바디감이 좋은 쪽이 많은데 콜롬비아는 또 약간 산미가 좋은 친구들도 있는 편이며 인도는 바디감이지 싶네요. 골라마시고 찾아마시는 재미가 있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만나면 즐겁고 행복해요.  


행복하게 한 잔!


Q. 커피를 취미로 한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까요? 

   카페라던가 여행지에서 맛있는 커피를 찾는 쪽은 아예 별개로 다루고, 이번엔 오로지 집에서 내려마시는 기준으로만 설명하겠습니다. 집에서 쉽고 맛있게 내려마시긴 드립 커피가 최고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무턱대고 내리면 원두의 온갖 맛이 다 추출되고 맛있는 부분을 뽑아내지 못해 정말 맛이 없지만 방식만 알면 꽤 괜찮은 맛을 보장하거든요. 제일 쉽고 간편한 도구로 '하리오'를 생각하기 때문에 '하리오 드립'으로 검색하여 나오는 방법을 따라 해 보길 추천합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데서 배우면 확실히 좋은데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드리퍼는 1~2 인용부터 시작해서 크기가 커질수록 인원 수도 커진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보통은 1~2인용을 추천합니다. 


   하리오 드리퍼와 주전자는 2만 원대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정량대로 내리는 게 좋긴 한데 다 필요 없고 추출 기구에 집에 있는 주전자나 컵을 이용하겠다 한다면 드리퍼만 몇천 원대로도 구할 수 있습니다. 원두는 가능하면 카페에서 갈지 않은 상태로 구매하길 권장합니다. 집에 도구가 없다면 갈아서 받아도 되긴 하는데 공기에 닿는 면이 많아 빨리 맛이 변질되거든요. 물론 갈지 않는다면 가는 도구, 그라인더를 추가적으로 구매해야 하니깐요. 


   원두도 사야죠. 근데 드립용으로 대형마트에서 구매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보통 원두의 유통기한은 로스팅 한 시점으로부터 일 년입니다. 사실 유통기한을 지나더라도 상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맛의 차이가 발생하더라고요. 근데 ‘일 년’이라는 기간은 아메리카노로 추출해서 마실 때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드립 커피 용도로는 로스팅 후 한 달 이내에 소비하는 쪽이 좋습니다. 근데 마트에서 판매하는 이미 입고되는 시점에 한 달이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성품은 보통 양도 많다 보니 한 달 내 소비하기도 힘들죠. 그러니 웬만하면 집 근처 카페라던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구매하시면 좋습니다. 100g에 8,000~15,000 사이로 구할 수 있습니다. 비싸다고 무조건 맛있는 커피는 아니니 본인의 취향을 찾아가는 쪽이 좋겠죠. 100g이면 드립 커피 기준으로 5회 분량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원두를 구매할 때 갈지 않은 녀석(보통 ‘홀빈’이라 불립니다.)으로 받았다면 그라인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처음엔 구매처에서 갈아달라고 해도 돼요. 그라인더를 사려면 또 돈인데, 본인이 잘 해먹을지 확신이 없다면 쓸데없는 지출이니깐요. 대신 빨리 산패(酸敗)하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미리 갈아두면 금방 향이 달아납니다. 공기에 닿는 면적이 원두에 비해 훨씬 많으니깐요. 그래도 막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일주일 정돈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집에 그라인더가 있습니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결국 여기까진 가실 거예요. 그라인더는 전기로 믹서기처럼 자동으로 갈리는 전동 그라인더와 손으로 가는 수동 그라인더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긴 합니다만 가정에서는 수동 그라인더를 추천합니다. 칼리타에서 나오는 KH-3 핸드밀은 2만 원 초반에 구할 수 있습니다. 원기둥 형태라 파지 하기에도 괜찮고 굳이 더 비싼 친구를 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전동 그라인더는 어지간해선 추천하지 않습니다. 몇만 원 대로는 칼리타 핸드밀 정도의 퀄리티가 나오질 않거든요. 가정용으로 쓰기에 괜찮은 친구는 '페이마'라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그라인더가 할인하면 12만 원 정도에 나올 때가 있습니다. 해당 제품 말고는 더 위로 갈 필요도 없고 그 아래 제품을 사기도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힘에 부치는 것만 아니라면 칼리타 핸드밀이 정말 괜찮습니다.  


커피는 다양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커피에 푹 빠져 살기 때문에 더 많은 도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초기 비용 2~5만 원 내외, 매달 원두 구매비 1만 원 내외로 충분히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일단 그렇게 해보면서 찬찬히 커피 맛도 알아가고 깊게 빠져들고 싶다면 하나씩 도구를 추가해가면 되는 거죠. 가장 처음 추가하면 좋은 건 '드립포트'라고 부르는 드리퍼에 물을 붓는 주전자입니다. 두께나 모양, 크기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싸게는 만원대에서 비싸기론 십만 원 대도 있습니다. 자기 손에 맞고 이쁜 친구를 사면 되는데, 350ml 사이즈 정도로 물이 나오는 입구가 좁고 아래를 보고 있을수록 초보자들이 사용하기가 좋습니다. 칼리타에서 나오는 펠리컨 법랑 포트가 사용하기에 매우 좋은데 용량이 1L라 크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보통 칼리타에서 나오는 호소 구치 드립포트 같은 제품이 대중적입니다. 저는 돌고 돌아 유키와 라는 브랜드 포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리퍼를 무엇으로 사용하냐에 따라 같은 원두라도 맛이 달라집니다. 그게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물 온도, 원두 굵기보다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리오, 칼리타, 메리타, 고노 가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이고, 케멕스처럼 드리퍼와 서버가 일체형으로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커피는 그냥 커피에 불과할 수 있지만 저는 카페나 여행, 캠핑, 커피 잔, 디저트, 위스키 등등. 너무나 다양한 취향과 취미로 확장되었습니다. 심지어 삶을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저란 사람을 설명할 때 커피를 빼놓고 말하기는 쉽지 않네요. 취미라는 측면에서 저는 제 손으로 내린 커피를 사랑합니다. 매번 미묘하게 달라지는 맛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날의 컨디션이라던가 감정 상태를 찾기도 할 정도니깐요. 너무 과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한번 해보시면 깨달으실 수 있어요. 누군가가 내린 커피에는 그 사람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내린 사람의 성격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납니다. 내리는 속도나 대하는 태도 등에서 맛이 변할 정도로 커피는 예민한 친구거든요.  


   똑같은 원두에 같은 추출 도구를 쓰더라도 맛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숙련도라던가 기술을 떠나서요. 커피를 배울 때 수강생들과 내려마시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점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스타일에서 미묘한 차이가 생긴 단겁니다. 정말 제대로 내리시는 분들은 그것마저 정량화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희 같은 아마추어에선 그 자체로 저마다의 특색이 되더군요.  


   제가 내리는 커피는 무슨 맛이냐고요? 진하고 진득하며 진지한 편입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과 천성적으로 느긋하고 느리지만 불같은 성정이 커피에 담겨서 그런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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