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학창 시절 무엇이든 맛깔나게 묘사하던 친구가 부러웠다. 뭔가 언변이 화려한 쪽은 아니고 살짝 무뚝뚝하고 건조해 사막 같은 화법을 쓰던 친구. 사막을 정신없이 헤매다 오아시스를 마주칠 확률 정도로만 말문을 열곤 했었던, 그 정도로 평소 말이 많던 친구도 아니었다. 근데 그가 그냥 툭툭 내뱉는 몇 단어에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 광활한 공백이 묘하게 풍부했다. 직관적이지 않은데 어스름하게 연결되어 그 상황이 전부 이해되는, 근데 그 어스름함 속에 길을 잃진 않고 명확하게 설명해내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친구였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는 많이 쓰고 유려한데 정작 전달력 자체는 어설펐던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라 더욱 그랬다. 그가 많이 부러웠다. 글을 잘 쓰고픈 지금에 있어서도 가장 탐나는 재주다.
미술 전시회를 다니다 보면 신기한 공통점을 찾게 된다. 보통 단일 작가의 전시회의 경우 초기 - 중기 - 말기 작품 순으로 배열하는데, 그 안에서 확연히 달라진 화풍을 심심찮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미술사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전시회를 다녀본 바, 특히 ‘인상파’라던가 ‘추상화’ 쪽 ‘대가’라 불리는 작가들에서 자주 발견했다.
초기 작품은 보통 뭔가 아름답고 세밀하다. ‘와’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직관적이다. 정말 잘 그렸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그런데 어느 시점 이후부터 대충 휘갈긴 듯한 기분이 든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단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보게 된다.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이 현실과의 ‘유사도’나 ‘복제’에 있다면 영 틀린 그림이라고 평가할만한 방식들. 선 몇 개로 대략적인 스케치를 해내는 크로키와도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풍부하다. 이전의 그림에선 듣지 못할 작가의 목소리가 몇 배, 몇 십배로 늘어나 있다.
단순화라기 보단 함축. 선 하나에 삼라만상의 이치를 담아낸다. 은유의 압축성에 압도되어 버린다. 작품 하나에서 소설 한 편 같은 기나긴 서사를 마주할 때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에너지를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다. 분명 잘 그린 그림으로 느껴지는 건 전자인데. 깊은 곳에 닿아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후자일 때가 많아서다.
글도 그렇다. 산문과 운문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가 참 어렵다. 몇 단어, 몇 문장으로 함축된 서사를 보고 있자면 동경과 함께 지레 겁부터 먹게 된다. 본인은 해낼 수 없다 백기 투항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그 예시로 딱이다. 몇 장 넘기다 보면 무던히 툭툭 던져놓은 단어들이 신기하리만치 가슴에 박힌다. 그러면 그 낱말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보는데, 이내 거대한 호수의 수평선을 마주한다. 그런 상황까지 마주하게 된다면. 가슴속은 여지없이 저 깊고 단단하며 잔잔한 호수와 다르게 풍랑을 맞이한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은유로 써진 것도 아닌데. 어린 소년의 일기처럼 드문드문 여백 많은 문장일진대. 가슴속 깊은 한 지점을 찔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은, 만연하게 쓰인 문장과 설명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선이 있다. 명확히 ‘길’이라 명명되지 않은 오솔길을 걷는 기분. 살짝 거칠고 스스로 짚어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지만. 행여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잘 닦인 도로로는 표현해낼 자신이 없는 그의 감정. 이쪽은 가슴팍에 화살이 박혀 고동치는 맥박에 따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짐승의 마음을 품을 뿐이다. 나도 그가, 그가 써내려 간 시와 같은 사람이고 싶다.
최근에는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란 노래가 또 그랬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란 뜻의 제목을 가진 중국 노래. 영화 ‘첨밀밀’의 대표곡이라 익숙했었다. 예전에 알았을 땐 그냥 노래였었다. 그냥 옛날 홍콩 영화 속 노래. 나이치고 홍콩 영화에 빠져 살았던 아이였던 터라 많이 들었던, 그냥 추억의 노래 정도. 오히려 ‘주성치 선리기연’에 나오는 ‘일생소애’라는 노래를 좋아했더랬지. 월광보합에서 선리기연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기도 하거니와 그 구구절절한 슬픈 정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얼마 전 좋은 노래라며 추천받았던 월량대표아적심을 다시 들었을 땐. 10대나 20대 때 들었던 그 노래가 아니었다. 그때 알던 노래가 아니었다. 몇 단어 쓰이지 않고 반복되는 가사. 직접적이지 않고 한껏 은유적인 단어들. 마치 찰나를 붙잡아 꼭꼭 눌러쓰되 잊힐까 두려워 조심스레 읊조린듯한 문장. 그런데 그 음절 하나하나 마음에 박히어 들어왔다. 별처럼 빛났다.
你问我爱你有多深 我爱你有机分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물었죠.
我的情也真 我的爱也真
내 감정은 진실되고, 내 사랑 역시 진심이야.
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你问我爱你有多深 我爱你有机分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물었죠.
我的情不移 我的爱不变
내 감정은 변치않고, 내 사랑 또한 변치 않아.
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轻轻的一个吻 已经打动我的心
가벼운 입맞춤은 이미 내 마음을 움직였고,
深深的一段情 教我思念到如今
깊은 사랑은 내가 지금까지도 당신을 그리워하게 만들어.
你问我爱你有多深 我爱你有机分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물었죠.
你去想一想 你去看一看,
생각해보세요. 보라구요.
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나 짧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단순한 말 한마디, 누구나 쓸 수 있는 그 말에 이 내 마음을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불신 자체가 무의미하겠단 생각을 저 노래를 통해 깨달았다. 그날의 상황과 거리와 관계와 분위기. 비언어적 몸짓과 떨리는 음성. 대체할 무언갈 찾기보단 진심을 담아내기에 집중하면 그걸로 될 테니. 상대도 나와 같다면 그 정도로 충분할 테니, 아니 그 무엇보다 가치 있을 테니.
역시 어쩔 수 없다. 글쓰기와 글쓰기를 위한 생애에서도 다른 방법이나 미사여구를 택하기보단 정면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말 한마디로도 충분한 사람. 단단하고 빛나며 따뜻한 언어를 품는 사람 말이다. 그런 이가 된다면 지금의 고민은 무의미하겠지. 그날의 분위기만으로도, 저 달빛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https://youtu.be/SgT3pqoww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