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Jul 30. 2022

윤슬에게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같은 당신에게.

   세상에는 모르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 나름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지없이 초면이신 분들을 마주한다. 신조어처럼 새롭게 탄생하여 익숙지 않은 친구들도 있는 반면, 꼭꼭 숨어 있거나 자주 쓰이지 않아 그 존재가 희미한 쪽도 있다. 그런데 후자 중에는 마치 창고 속 먼지 쌓인 보물처럼 매력 넘치는 아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톺아보다’란 말이 그렇다.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라는 뜻의 단어인데 그간 살면서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애플이 제품 사이트에서 저 단어를 ‘자세히 보기’란 말 대신 썼었다. 짧고 간결해졌지만 명확한 의미 전달. 함축적인 표현. 멋지지 않은가? 저렇게 읽히는 말들이 좋다. 마음에 들어찬다. 


   ‘윤슬’이란 단어는 들어본 적이 있는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일컫는 말이란다. 담고 있는 뜻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이 역시 우연히 알게 된 말인데, 윤슬이란 이름이 붙은 그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작가님 성함인 줄만 알았는데. 작품 제목이란다. 무슨 뜻인가 하고 찾아보니 저런 문장이 나왔고, 세상에 또 이런 단어가 숨어있었구나 싶어 신기했다. 


윤슬과 같은 순간.


   나는 윤슬이란 단어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니,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딱 저 말이 품고 있는 장면과 목도하는 일을 평소부터 사랑해왔기 때문이다. 


   잔잔히 물결치는 수면 사이사이로 켜켜이 쌓인 눈부신 색채의 향연. 


   그런데 유독 말로 표현해내기 참으로 어려운 장면이라 남들에게 설명하기 난처했다. 스스로 그렇게 좋아하는건데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지. 그런데 딱 알맞게 떨어지는 말이 있었다니. 그 마저도 저렇게 어감 좋고 아름답게 짜인 2음절의 단어로 말이다. 


   잔물결에 햇볕이 사르르 내려앉는다고 표현해왔다. 또는 꾹 참고 있다 우연히 저 장면과 마주했을 때 ‘딱 이런 느낌을 좋아해’라고 고백하곤 했었는데. 또는 ‘모네의 그림과 같은 시간을 마주하는 일을 좋아해’라던가. 마음에 들어차는 순간을 함축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희열은 생각보다 소중하다. 


소중하게 맞이한 순간.


   사실 ‘윤슬’뿐만이 아니다. 한 단어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일은 나에게 있어 더없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태생적으로 채우는 일보다 빼는 일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서다. 원하는 단어들과 미사여구를 총동원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일은 쉽다. 화려하고 유려하게 포장하면 되니까. 만연체를 추구하고 싶진 않지만 본의 아니게 혓바닥이 긴 글쓰기를 하는 입장에서 더더욱 그렇다. 무언가가 이 세상에서 아름답게 여겨지는 이유 열 가지를 말해보라 한다면 그건 해낼 자신이 있다. 스스로 아름답게 여기는 장면이라면 말이다. 하나하나 찾아가며 추앙하고 미(美)의 환영을 좇으면 되니까.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딱 한 단어 내지 문장으로 표현해내라 한다면 꿀 먹을 벙어리가 될 자신밖에 없다. 무수한 이유를 단 하나의 화살로 관통해낼 자신이 없다.  


   물론 어떻게든 표현해낼 수는 있을게다. 다만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전부 다 포괄해내고 싶은데. 근데 그걸 유일무이한 짤막한 즐거움으로 축약하려면 성에 차지 않는다. 이 단어는 저쪽이, 저 단어는 이쪽이 자꾸만 삐져나오고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다. 늘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다고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느니 그저 만연하고 미사여구가 많은 사람으로 남겠다.  


   그런데 가끔씩 ‘윤슬’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윤슬’과 같은 표현을 곧잘 해내는 사람 말이다. 현재를 축약하여 건네고, 별말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울린다.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일지라도 이쪽은 성능 좋은 압축 해제 프로그램이 된 기분이다. 한 단어에 내재된 열 가지, 백가지, 천 가지 단어가 유채꽃밭처럼 마음의 들판으로 펼쳐진다. 왠지 모르게 납득되는 그 언어적 공감대 형성에 감탄할 따름이다. 계량 없이 재료를 툭툭 썰어 넣었는데도 그 어느 음식보다 맛있는 실전 고수 손맛과 같다. 근데 난 그걸 해내지 못한다. 해낼 수 없는 부류에 속한다. 어쩔 수 없이 그의 표현 방식과 감성을 질투할 따름이다. 


질투할래야 할 수 없는.


   모두가 갖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런 사람이 있기에 자꾸만 욕심이 난다. 나 역시 톺아볼 줄 알고 윤슬 같은 마음인 사람이 되고 싶다. 이쪽 역시 당신처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더라도 마음을 건드리는 사람말이다. 


   ‘만연체’적 인간으로 살고 싶어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다. 당신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그 미적 근원을 찾아내는 일도, 모든 순간을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의 그릇도. 얼마 되지 않는 단어의 나열들로 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부럽다. 윤슬 같은 네가. 너의 시선에 닿아 파도처럼 하얗게 부서지고, 백사장을 아름답게 쓸어내리는 낱말들을 사용하는 당신의 감각처럼. 나도 그런 문장을 품어보고 싶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매거진의 이전글 나와 같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