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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Feb 01. 2023

기묘한 신년계획

몇 살까지 직장인으로 살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연초부터 타 부서 직원의 권고사직 소문을 전해 들었다. 공교롭게도 친분 있던 사람이라 괜스레 남일 같지 않다. 본인에게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는 아니라 확실하진 않지만 이 회사 특성상 없는 말이 나오진 않았을게다. 결국 진짜일 확률이 높단 얘긴데, 놀라긴 했지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다. 외국처럼 성과 위주로 잘라내는 방식과는 다르다만, 이 회사에서 첫 번째로 일어난 일은 아니니까. 근데 마음이 까끌까끌해져 버렸다. 결국 별생각 없이 넘겨내진 못했네. 


   최소한 지금까지 회사는 매우 소극적으로 권고사직 카드를 쓰는 편이었다. 여태까지 봐온 사례는 누가 들어도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인원에 한해 벌어졌으니까. 사측의 반대편에서 실눈을 뜨고 바라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의 근무 태만이라던가 월급 루팡, 또는 직원 폭행 등등. 업무 능력이 떨어진단 핑계로 슬그머니 자회사로 보내버리는 경우까진 왕왕 보았다만. 최소한 그는 위에 열거한 항목 중에 포함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복잡한 법적 절차는 모르겠다만 중대한 귀책사유 없이도 권고사직 카드를 날릴 줄 아는 회사였었나? ‘귀신은 저런 놈도 안 잡아가고 뭐 하나’싶은 사람은 올해도 회사에 붙어 있다는데. 기준이 뭐려나.  


   ‘XX님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라며 탈락을 안내하는 경연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우리와 함께’라. 프로듀서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이 다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실력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우리’ 안에 품지 못한 ‘XX’님은 별이 되어 떠나간다. 회사 동료도 마찬가지다. 일련의 사연을 보고 듣진 못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 비판을 할 수 없지만 그와 관련된 의문부호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어려운 마음.


어렵다. 남의 일이기도 하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만.
괜스레 남 일 같지 않은 마음이 든단 말이지.  


   ‘안정된 직장’이란 말이 유니콘처럼 보일 때가 있다. 정확히는 ‘안정된’이란 단어가 유니콘의 뿔처럼 보인다. 튀어나온 못 같아 보이기도 하고. 뿔만 떼면 말이나 유니콘이나 그게 그거이듯, ‘안정된’과 분리된 ‘직장‘이란 단어 자체는 세상에 매우 적합해 보인단 말이지. 불편해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처럼 꼬여버린 마음에선 ‘X 년 동안은 안정될 직장’이라고 미사여구까지 굳이 붙여야 줘야 고개를 끄덕거려 봄직하니까.  


뾰족함이 연속되면 둥글둥글해질 수도 있음에.


   지금이야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고 회사 책상이 견고해 보이지만 사실 언제 어느 때이고 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니 모래성이다. 애당초 ‘안정’의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돈을 받고 매일같이 야근하면 안정된 삶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일한 만큼 덜 받고 저녁 있는 삶이 있다면 그거로 만족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김에 끝까지 가야겠다. 직장이란 또 무엇인가? 아버지 세대완 다르게 직장과 자아를 분리하는 시선으로 일하는 지금이라지만, 회사가 작은 사회이자 철저한 이익 추구 집단이란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사회적 동물로써의 난, 직장을 생각하며 움츠러 들 운명에 처한 비운의 주인공 역을 자처할 수밖에 없나 보다. 친구와 적, 암묵적 동맹 관계. 일만 잘하면 된다지만 정치도 일의 연장인 세계. 하지만 결국 이윤 추구를 위해 흘러가는 대승적 경쟁 구도. 모든 곳이 다 그렇듯 돈을 벌기 위해 굴러가야만 하고, 잠시라도 멈추면 고인 물이 되어 썩어버리는 과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의 목적이 되어줄 월급. 죽을 때까지 일하거나 일하지 않을 만큼의 돈을 모아두기 전까진 직장 안에서 생존해야만 한다. 


   머리가 아프다. 6, 7년 차 직장인의 삶. 갓 입사했을 때만 해도 패기 넘쳤다. 혹여 잘린 꼬리가 되더라도 금세 다른 회사 자리를 꿰찰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어떠려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겨울의 시린 공기가 파랗다. 지금 난 뭘 하고 있지?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일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더라. 흐릿하다. 어쨌든 난 나의 세계를 스스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오늘처럼 내일도 모레도, 당분간은 출근하고 눈치싸움을 벌이고 일을 해서 돈을 벌겠지만. 목적과 결과가 전도되는 서글픈 일상만은 사양인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마른하늘에서 천둥소리를 들은 기분이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텐가. 지금이 맞긴 한건가. 


   소문을 들은 뒤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죽은 자는 말이 없듯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소문이 와전되었거나 조용히 떠날 요량이려나. 어쨌든 이쪽에서 먼저 얘기를 꺼낼 순 없으니 기다릴 뿐이다. 어제의 나 같기도 내일의 내가 될 수도 있는 오늘의 그니까. 그래도 최소한 몇 마디 말은 나누고 떠났으면 좋겠다. 그를 생각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이 조금 더 차게 식었다. 


   올해의 다짐은 약간 심란해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해진다.  


이게 맞나 싶은데 맞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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