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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Nov 13. 2017

크로키처럼 써 내려가는 글.

서문, 혹은 첫 시작.

  두 달이란 짧은 시간 동안 신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먼저 내 발로 나올 마음을 먹었던 첫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다시 구직 시장에 떨어졌다가 마음을 추슬러보니 한 달만에 새 회사가 구해졌다. 일했던 분야가 워낙 기술 중심에 특수하고 수요가 많지 않아 다시는 이쪽 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직군의 기획자로 일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겼다. 더 좋은 조건이나 가까워진 통근 거리에 군말 없이 회사를 다니면 되는 행운은 덤이었다. 


큰 일도, 작은 일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 버린다.


  정신없이 직장을 구하고, 바쁘게 적응하다 보니 두 달은 금방이었다. 의무감에 글을 끄적이다 지우기를 반복했던 시간을 제외하면, 제대로 글을 써보려 엉덩이를 붙인 것도 두 달 만이다. 가방에 노트나 볼펜은 늘 들고 다녔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굳이 댈 필요 없는 핑계를 말해보자면, 지금 회사는 업무적으로 하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써야 하는 보고서나 요청서가 많다 보니 퇴근 후나 주말에 취미로 글을 끄적거릴 힘이 남질 않았다. 말하는 나도 참 구차한 핑계다 싶긴 한데 실제로 그랬다. 이유를 적고 보니 그냥 회사에서 잘릴 때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회사에 적응할 때는 몸에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싶지만. 글 쓰는 사람의 최고 덕목으로 꼽힌다는 ‘무거운 엉덩이’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나 보다. 



  어쨌든 인생은 알 수 없고, 아이러니하다. 젊을 때는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고, 늙으면 돈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말을 두 달 사이에 충분히 느껴버렸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두 달은 어떻게 보면 시간과 돈은 적당했고 몸도 건강했음에도, 여행이나 출사는 고사하고 무엇 하나 하기에도 마음은 늘 불편했다. 글을 쓸 생각은 애초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짧은 글에 부담 없이 쓴대도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한데 마음이 너무 번잡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온갖 비유와 묘사를 하고 싶어 하는 글 취향이 더욱 볼펜을 무겁게 했다. 이런저런 핑곗 거리가 늘어났고, 필요해졌다. 


젊을 때도, 젊지 않을 때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글을 대하는 자세에서 조금 힘을 빼더라도 자주, 많이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짧은 순간 사물의 특징과 형태를 잡아내는 크로키처럼. 오래 묵히지 않고 내리는 하리오 커피 드립처럼 써 내려가 볼 작정이다. 모든 문장에 공을 들이지 않거나 길게 묵히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에도 사건과 모순, 아이러니 함은 충분히 뽑혀 나오니까. 



보통 사진을 찍다보면 발생하는 빛 무리는 렌즈의 결함 때문이라고들 한다. 근데 그 결함이 좋은 것은 아이러니일까, 고집일까.


순간순간을 기록하기에도 시간은 너무 빠르고, 내 손은 너무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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