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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Dec 01. 2017

가을이 곁에 없다면.

12월 1일에 쓰는 글.

  회사 길 건너편에는 꽤나 큰 공원이 하나 있다. 옆에는 하천도 흐르고 한 켠에는 생태 학습용 연못도 있어 그럴싸한 구색을 갖춘 공원이다. 점심때마다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고, 나 역시 대충 점심을 먹고 남는 삼십여분 동안 공원을 걸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공원을 처음 찾기 시작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이 곳이 작은 부지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라는 점이었다. 보통 공원이라 하면 큰 대지가 있고, 그 안에서 여러 갈래로 길이 나눠지기 마련인데, 이곳은 몇 개의 작은 공원이 군데군데 모인 집합체였다. 회사 바로 앞에 있는 곳은 공원이라고 부르기에도 약간 민망한 크기라 잠깐 앉아 바람이나 쐬다 가려했는데, 공원 끝 풀숲에 숨겨진 길로 내려가 보니 하천이 있었고 하천을 건너보니 새로운 공원이 나타났다.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점점 더 큰 공원이 나타나는 식이라 무언가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도심 속 가을 찾기.

 

  하천을 건너면 새로운 공원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날, 산책로는 단풍으로 절경이었다. 도심 한 복판에 이 정도 풍경이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은행잎이 한창 우거진 길가와, 나무 위에 수북한 단풍이 비치는 하천, 길가에 깔린 노란 물결까지. 샛노란 하늘과 길가, 은행나무 밑의 벤치와 거기에 앉은 사람들, 그들을 비추는 가을 햇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장범준 2집, 그녀가 곁에 없다면. 쌉싸름한 행복이었다.  


가을만이 가지는 색.


  언젠가 어머니께서는 내가 잊고 있던 가을 무렵의 이야기에 대해 말해주셨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들이 선물이라고 단풍잎 몇 장을 고사리 손에 들고 왔던 일인데, 바닥에 떨어진 색이 너무 예뻐서 모양까지 온전한 잎들로 골라 가져왔다고 했단다. 어머니는 그 순간이 너무 기뻐서 잊으실 수가 없으셨고, 단풍잎은 두꺼운 책 사이에고이 간직하셨단다. 순간 낙엽 쪼가리보다 기뻐하실 만한 선물을 드리지 못한 무뚝뚝하고 못난 아들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대여섯 살의 순수함을 이길 자신이 없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선물이 너무나도 좋으셨던 나머지 잘 말린 낙엽 몇 장을 안방 전축 위 아들이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으셨단다. 잘 보이게 두면 또 가져다줄까 싶어서. 사실 어머니의 추억을 들으며 첫 번째 단풍 선물을 했던 기억은 얼핏 떠올랐지만 그 이후로도 단풍 선물을 드렸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드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소소하지만 큰 기대를 저버렸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아들의 마음은 쌉싸름해졌었다. 


굳이 흔들어 떨구지 않더라도.


  그 당시에 느꼈던 쌉싸름한 감정이 공원에서 느꼈던 그것과 거의 비슷했다. 가을에 얽힌 이야기는 하나 같이 아린 뒷맛이 있다. 가을 냄새라던가,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 분위기, 색 전부. 아름답고 행복하지만 씁쓸한 뒷 맛이 깔린다. 초콜릿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가라앉은. 표현력이 짧은 나로서는 집에서 끓인 생강차 같은 맛이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가을의 아린 맛은 몸에 좋다고 억지로 생강차를 마셨던 그때보단, 여전히 그 맛은 싫지만 종종 그리울 때가 있는 지금이 좀 더 어울린다. 12월에 접어들어 생강차가 어울리는 날씨가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맛볼 수 없는. 가을이 곁에 없다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그 요상한 감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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