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아들의 자필 편지를 위한 초고
아버지..! 얼마 전, ‘국가부도의 날’ 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97, 8년도 즈음의 우리나라, 그러니까 IMF 전후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었어요. 그 당시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다룬 첫 영화라고 하는데 보는 내내 마음이 좋질 않았습니다. 영화 속 상황과 지금의 저를 견주어가며 간접 체험하는 느낌이었거든요. 당시의 전 초등학생이었고 그때를 직접적으로 체감할만한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안 좋은 정도로만 어렴풋하게 알았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 당시 당신의 나이에 비해서는 아직도 어리지만, 당신께서 IMF 전후로 처하셨을 상황에 공감하고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만큼은 나이를 먹었으니깐요.
아버지..! 가끔씩 당신께서 살아오신 날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을 때가 있으셨죠. 유년시절부터 최근의 당신까지, 그동안의 굴곡들에 대해 말씀해주시곤 했었죠. 이야기를 들을 땐 그게 무슨 상황이고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루하루 당신의 나이를 좇고, 저도 사회생활에 연차를 더해 갈수록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피어납니다. 당신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다 지나오셨을까요? 제 삶에 늘 힘든 시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듯, 당신께서도 그러셨겠지만. 그 긴 세월 당신과 가족, 당신께서 처하신 환경을 위해 사셨을까요. 당신의 자식이자, 한 사람으로서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 마음이 커져 가네요.
돌이켜보면, 아버지께서 겪은 나날들이라던가 사회의 굴곡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저의 유년은. 당신의 힘듦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인지했던 어린 시절은. 당신과 어머니께서 저를 지켜주셨음이겠지요. 아버지께선 아버지의 이름으로 또 어머니께선 어머니의 이름으로 저를, 가족을 지탱해주셨음이겠지요. 부모님께서 부모님의 이름으로 희생하신 것들로 말미암아 저도 아들로서 의 삶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써 살 수 있는 거겠죠. 나의 삶을 사는 것보다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곱절은 힘드셨을 것이기에. 민망하고, 또 표현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란 핑계로 여태껏 한 번도 소리 내어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늘 감사하고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따뜻하고 뜨거우며, 차가운 것이란 사실을 언제나 가르쳐주시는 나의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네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