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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Mar 07. 2019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

삼천 원어치의 호사.

'누군가 나에게 1인 가구의 필수품을 묻는다면, 왼손에는 물티슈, 오른손에는 돌돌이를 들어 보여줄 것이다.'
- 본인의 소고.-


   홀로 살며 집에 들인 물건 , 물티슈와 속칭 ‘돌돌이 불리는 테이프 클리너만큼 만족도가 높은 제품을 찾기 힘들다. 무언가 먹다 남긴 흔적이나 얼룩은 웬만해선 물티슈  장으로 해결이다. 쓰기 좋게  장씩 뽑히고, 물을 적시거나   없이 바로 쓰면 되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돌돌이도 마찬가지다. 옷의 먼지떼는데 이보다 쉽고 빠른 물건은 없다. 먼지를 떼는 김에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에도 슥슥 돌리면 바로 해결이니 본디 가지고 태어난 청결함보다  깨끗하게 사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품위 유지를 위한 최소의 비용으로 들여 조금  부지런하게 살아도 되니,  마음속의 노벨상은 물티슈와 돌돌이 특허권자에게 있다.


   어느  문제가 생겼다. 돌돌이 리필이  떨어질 때까지 구매를 차일피일 미룬 것이 화근이었다. 당장 필요하여 평소 쓰던 제품 대신 동네 잡화점에서 규격이 맞는 리필을 샀다. 심지어 원래 것보다 싸길래 횡재한 기분으로. 하지만  장을  동안은 몰랐다. 내가 무슨 짓을  것인지. 다년간의 경험상, 돌돌이의 핵심은 ‘접착력 ‘매끈함 있다. 접착력이라 함은 테이프에 먼지가 얼마나  붙느냐이다. 특히 옷감의 손상이 최소화되는 정도라면 금상첨화다. 매끈함이란   부분을 떼어내고 다음 장을 맞이하는 과정이 얼마나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지를 의미한다.


   돌돌이를 사고 난 다음날, 출근길 직전에 찾은 문제는 ‘매끈함’ 쪽이었다. 문제라기보단 매끈함이란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단 떼어지지가 않고, 떼어지더라도 도중에 조각조각 찢어졌다. 새 물건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힘을 조절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운이 좋아야 서너 번 만에 해결되고, 떼고 나서도 만족스럽지 않다. 분명히 테이프와 테이프 간격이 분명하도록 실금이 그어져 있는데 그대로 뜯어지는 법이 없다. 쥐어뜯다 보니 늘 쥐가 파먹은 모양새다.

인생의 작은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홍콩에서.
누군가 문명의 이기에 중독된 현대인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었을 돌돌이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성질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란 것을 진즉부터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많이 쳐주어도 고작해야 회당 30초 정도의 번거로움이다. 접착력 자체는 문제가 없어 사용하는데 큰 무리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심지어 쓰면 쓸수록 짜증은 누적되어만 갔다. 옷에 뭍은 먼지만 보아도 돌돌이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직전까지 되었을 때에, 문득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래, 이렇게 살 수는 없어.’
-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 중 ‘정자’에서 -

 

  그 날 바로 작은 사치를 부렸다. 무인양품에 가서 원래 쓰던 돌돌이 리필을 샀다. 절반 정도 남은 고문 도구를 분리하고 새 리필을 끼웠다. 첫 장을 바로 쓰고 다음 장으로 뜯어내었다. 매끄럽게 떼어지는 테이프를 손끝으로 느끼며 이전까지의 편안함을 확인했다. 마음속의 부처님을 확인하며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평온을 얻었다.

이 당시 내 마음 속 평온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햇살 같은 느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돈으로 산 것이 맞다. 다만, 같은 돈을 주고서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샀다. 이런 경우가 ‘사용자 경험의 극치’이겠다 싶은 생각은 기획자 직업병의 말로이겠고. 쓰다 남은 돌돌이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다 과감히 버렸다. 아깝지만 다시는 쓸 자신이 없었다. 버린 돌돌이와 새 돌돌이 값을 합하여 삼천 원의 사치를 부려 호사를 누렸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큰돈이 아니라도 얻을 수 있는 행복과 평안이 있다. 나 역시 물질만능 시대의 노예를 자처하지만. 행복의 가치를 측정하는 역할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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