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원어치의 호사.
'누군가 나에게 1인 가구의 필수품을 묻는다면, 왼손에는 물티슈, 오른손에는 돌돌이를 들어 보여줄 것이다.'
- 본인의 소고.-
홀로 살며 집에 들인 물건 중, 물티슈와 속칭 ‘돌돌이’라 불리는 테이프 클리너만큼 만족도가 높은 제품을 찾기 힘들다. 무언가 먹다 남긴 흔적이나 얼룩은 웬만해선 물티슈 한 장으로 해결이다. 쓰기 좋게 한 장씩 뽑히고, 물을 적시거나 할 일 없이 바로 쓰면 되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돌돌이도 마찬가지다. 옷의 먼지를 떼는데 이보다 쉽고 빠른 물건은 없다. 먼지를 떼는 김에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에도 슥슥 돌리면 바로 해결이니 본디 가지고 태어난 청결함보다 더 깨끗하게 사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품위 유지를 위한 최소의 비용으로 들여 조금 덜 부지런하게 살아도 되니, 내 마음속의 노벨상은 물티슈와 돌돌이 특허권자에게 있다.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돌돌이 리필이 다 떨어질 때까지 구매를 차일피일 미룬 것이 화근이었다. 당장 필요하여 평소 쓰던 제품 대신 동네 잡화점에서 규격이 맞는 리필을 샀다. 심지어 원래 것보다 싸길래 횡재한 기분으로. 하지만 첫 장을 쓸 동안은 몰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다년간의 경험상, 돌돌이의 핵심은 ‘접착력’과 ‘매끈함’에 있다. 접착력이라 함은 테이프에 먼지가 얼마나 잘 붙느냐이다. 특히 옷감의 손상이 최소화되는 정도라면 금상첨화다. 매끈함이란 다 쓴 부분을 떼어내고 다음 장을 맞이하는 과정이 얼마나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지를 의미한다.
돌돌이를 사고 난 다음날, 출근길 직전에 찾은 문제는 ‘매끈함’ 쪽이었다. 문제라기보단 매끈함이란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단 떼어지지가 않고, 떼어지더라도 도중에 조각조각 찢어졌다. 새 물건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힘을 조절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운이 좋아야 서너 번 만에 해결되고, 떼고 나서도 만족스럽지 않다. 분명히 테이프와 테이프 간격이 분명하도록 실금이 그어져 있는데 그대로 뜯어지는 법이 없다. 쥐어뜯다 보니 늘 쥐가 파먹은 모양새다.
누군가 문명의 이기에 중독된 현대인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었을 돌돌이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성질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란 것을 진즉부터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많이 쳐주어도 고작해야 회당 30초 정도의 번거로움이다. 접착력 자체는 문제가 없어 사용하는데 큰 무리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심지어 쓰면 쓸수록 짜증은 누적되어만 갔다. 옷에 뭍은 먼지만 보아도 돌돌이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직전까지 되었을 때에, 문득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래, 이렇게 살 수는 없어.’
-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 중 ‘정자’에서 -
그 날 바로 작은 사치를 부렸다. 무인양품에 가서 원래 쓰던 돌돌이 리필을 샀다. 절반 정도 남은 고문 도구를 분리하고 새 리필을 끼웠다. 첫 장을 바로 쓰고 다음 장으로 뜯어내었다. 매끄럽게 떼어지는 테이프를 손끝으로 느끼며 이전까지의 편안함을 확인했다. 마음속의 부처님을 확인하며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평온을 얻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돈으로 산 것이 맞다. 다만, 같은 돈을 주고서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샀다. 이런 경우가 ‘사용자 경험의 극치’이겠다 싶은 생각은 기획자 직업병의 말로이겠고. 쓰다 남은 돌돌이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다 과감히 버렸다. 아깝지만 다시는 쓸 자신이 없었다. 버린 돌돌이와 새 돌돌이 값을 합하여 삼천 원의 사치를 부려 호사를 누렸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큰돈이 아니라도 얻을 수 있는 행복과 평안이 있다. 나 역시 물질만능 시대의 노예를 자처하지만. 행복의 가치를 측정하는 역할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