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Mar 17. 2019

헤어지는 중입니다.

플라스틱 빨대는 빼주세요.

작은 다짐 하나 지키기가 이렇게나 어려웠을 줄이랴... 


   몇 년 전부터 ‘플라스틱 줄이기’와 관련된 캠페인들을 보아왔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단 무감각했던 쪽이 맞다. 나쁜 쪽은 과도하게 쓰거나 함부로 버리는 쪽이지, 분리수거를 착실하게 하려는 쪽은 합리적 사용자라고 생각해왔다. 굳이 문명의 이기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편하게 쓰고 분류만 잘해서 버리면 곧잘 재활용 플라스틱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몇 달 전 내가 좋아하는 의류 브랜드에서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을 크게 하기도 했고, ‘플라스틱 빨대 줄이기’ 운동이라던가 ‘카페 매장 내에서 테이크 아웃 잔 사용 금지’ 같은 이슈들이 나오면서 조금씩 내용을 찾아보았다. 검색해서 나온 내용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매우 달랐다. 플라스틱 재활용도 결국 경제 논리에 따라 새로 생산하는 비용이 더 쌀 때는 외면받기도 하고, 분류는 했어도 플라스틱 내 함유물에 따라 결국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도 많단다. 우선 절대적인 사용량 자체가 과도해서 문제이기도 하고. 미국에서만 하루에 소비되는 플라스틱 빨대의 개수가 5억 개 정도 된다는 대목에서도, 폐플라스틱을 자국 내에서 해결하기보단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식으로 처리하는 ‘치킨 게임’이 성행한다는 사실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구석마다 꽂혀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길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플라스틱 제품 중 유독 비닐봉지와 빨대 소비량을 먼저 줄이려는 이유가 ‘필수품이 아닌 기호품이어서’라는 대목에 납득이 갔다. 일상적으로 쓰고는 있지만 당장 없어져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당장 나부터도 쓰지 말라면 충분히 쓰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난 김에 내 삶에서의 플라스틱 빨대 근절을 다짐했다. 다짐의 서약은 인터넷에서 주문한 실리콘 빨대로 대신하고.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두어 달 때쯤 지났을까. 확실히 빨대 소비가 줄기는 했는데 사용량 제로의 삶은 아직도 실패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약간 집요하고 치열한 구석이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다짐이었다. 


   발생했던 애로사항 중 가장 빈번했던 경우는 ‘생각보다 빨대를 쓰지 않으려는 행동이 몸에 익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오랫동안 자연스레 사용해온 습관이라 쉽게 고쳐질 리 만무했지만 까딱 방심하다가는 빨대 포장지를 뜯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만약 포장지 재질이 비닐이라면 자괴감은 두배. 조금 낯 뜨거운 변호를 해보자면, 빨대와 커피를 함께 내주는 점원의 잦은 친절이 습관 형성에 방해가 되었다. 사실 내어주는 쪽은 나름의 호의, 혹은 서비스 정신의 발로이겠으니 탓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내어주는 손길에 습관처럼 빨대를 꽂고, 입을 가져다 대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깨닫고 마는 머리의 탓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종이 빨대도 습관 형성 자체에는 방해가 된다. 모든 빨대가 종이로 바뀌기 전까지는 결국 재질을 확인해보아야만 한다. 더구나 빨대 포장지가 불투명한 경우 손끝으로 주물럭거려 빨대 재질을 가늠해보아야만 하는데, 이미 내 손이 탄 빨대를 플라스틱 재질이란 이유로 내려놓는다면. 빵집에 놓인 빵을 손으로 찔러보다 점원과 눈이 마주친 꼬마가 되어 버리는 형색이다. 차마 두고 가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빨대를 꽂는다. ‘그냥 손대지 말걸’이라는 자책과 함께. 


   사실 이보다 난감한 경우는 빨대가 미리 꽂혀 나올 때이다. 

1) 반드시 빨대를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의식하며 들어선다.
2) 계산을 한 뒤 이번만큼은 성공하겠다는 결의에 불타며 순서를 기다린다.
3) 진동벨이 울려 찾으러 간 커피에 빨대가 이미 꽂혀있다.
4) 어이없는 실패에 너무 허무해 한다.
5) 자책하며 커피 한모금을 넘긴다. 

   카페가 조금만 커도 대부분 계산을 하는 직원과 커피를 내리는 직원이 따로니 왠지 계산할 때부터 빼 달라고 하면 민폐인 것만 같다. 혹여 말이 전달되지 않거나 밀려드는 주문에 깜빡 잊고 빨대가 꽂혀 나온다면. 나의 다짐을 위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계산을 하고, 주문한 커피가 언제 나오는지 기웃거리다 빨대를 꽂기 전 낚아채야 한다. ‘빨대는 빼주세요’라는 요청과 함께.  


   빨대가 꽂혀 나오는 경우는 사실 친구나 동료들과 카페에 갈 때에도 곧잘 발생했다. 보통 한 사람이 다른 사람 것까지 가져오는 경우, ‘매너’상 빨대를 구비하거나 꽂아서 올 때가 대부분인데 이러면 또 지금까지 말한 경우의 수 내에서 도돌이표다. 정말 환경을 생각하는 취지로 매일같이 텀블러라도 들고 다녀야 그나마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러면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에서 콜라를 마신다거나, 생과일주스를 마시고 싶을 땐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작은 다짐 하나로 파생된 수많은 변수에 머리가 아프다. 순간 위에서 말했던 '5억 개'란 규모가 더 이상 비현실적 이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아직 환경 운동 자체에 크게 관심이 있는 쪽도 아니라 사실 빨대 말고도 실천해야 할 일들도 너무나 많다. 그래도 마음먹은 이상 빨대만큼은 해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안 쓰는 일이 습관이 되면 지금의 번거로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언젠가는 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플라스틱 빨대를 안 쓰게 될 날이 올 테니까. ‘테이크 아웃 잔은 매장에서 사용이 불가하십니다’란 점원의 문장도 어느샌가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이 노력의 원천은 언젠가 보았던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거북이 영상’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그러는 쪽이 맞는 것 같아 이래 보기로 했다. 얼른 자라 옷이 몸에 맞길 바라는 아이의 심정처럼. 플라스틱 빨대를 습관처럼 쓰지 않게 될 날을 상상해본다. 


   며칠 전,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가다 빨대를 깜빡하셨다는 점원의 말에 가볍게 목례로 답을 대신하며 길을 나선 적이 있다. 번거롭더라도 결국 텀블러를 챙기는 습관이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보다 여러모로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집 찬장에 텀블러 하나씩은 두고 사니까. 텀블러 세척 용품을 알아보아야겠다. 




  본문에서 언급했던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거북이 영상’을 같이 첨부합니다.. 다소 보기 힘들 수 있는 영상입니다만... 불편한 진실이더라도 같이 공감하고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https://youtu.be/4wH878t78bw

불편한 진실.



매거진의 이전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