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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Apr 07. 2019

나를 부르는 노래.

아이슬란드를 앓다.

   부쩍 우울하고 쳐지는 나날의 연속. 간만에 생긴 휴가에 즉흥적으로 미술관에 들렀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말보다 평일 미술관을 즐긴다. 직장인이 평일에 미술관을 가기 위해서는 피 같은 연차를 소진해야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훨씬 한적하고 여유롭게 작품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특히 인기가 좋은 전시의 경우, 사람에 치이느니 과감한 휴가 소진 쪽을 택한다. 피를 내어주고 마음의 양식을 챙긴다. 


  이번에 들른 곳에서는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드로잉’이라는 주제로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이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었다. 평소 알던 작가라던가 작품은 없었지만, 천천히 그림을 둘러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살살 달래어 주었다. 문득 벽 한쪽에 걸린 작품에 시선이 꽂혔다. 큰 캔버스에 보라색 다발 꽃이 핀 들판, 그 가운데에 별처럼 박힌 주황 비니 사내가 그려진 유화. 문득 확신에 찬 탄성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건, 아이슬란드다.
전시회에서 본 그림. 엽서로도 한 장 사왔다.


   멍하니 그림에 빠져들다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모래 해변의 빙하라던가, 불타는 석양같은 작품이 몇 점 더 펼쳐져 있다. 아무리 봐도 저 그림들의 배경 모두 아이슬란드가 맞는 것 같다. 오른쪽에 몰려있는 작품 설명을 서둘러 훑으니 그중 석양을 품고 있는 바다 그림 제목이 ‘Iceland sunset’이다. 아아, 맞나 보다 아이슬란드가. 내가 떠올렸던 그 풍경들이 맞구나. 가슴에 품고 돌아왔던 그 분위기를 그림에서 찾아내었구나. 확신이 사실로 바뀌던 순간, 엄청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정취, 음악, 온 자연의 분위기가 호수 한가운데에 비치는 달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모든 그림이 아이슬란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미 그런 건 상관없어졌다.

아이슬란드의 빙하, 자연.

 

   2018년. 가슴속에 품고 사는 버킷리스트 네 곳 중 두 번째를 채웠다. 이미 채운 곳은 오키나와였고, 아직 채워야 할 곳은 티벳과 쿠바다. 두 번째로 채운 곳이 아이슬란드이고. 가보기 전까지는 상사병에 앓았고, 갔다 온 뒤로는 향수병을 앓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상사병과 향수병이 동시에 도진 상태이다. 해가 질 줄 모르는 백야의 아이슬란드에 갔던 터라 오로라를 눈에 담고 오지 못한 이유가 하나였고, 상황상 온전히 내 식대로 풀고 오지 못한 여행이었던 게 또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다. 대신 여름을 보고 온 덕분에 그곳에서 흔히 찾을 수 있었던 보라색 꽃, ‘루피너스’가 펼쳐진 그림만 보고도 아이슬란드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그림에서 보았던 풍경의 느낌으로.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가 뭐가 그리 좋다고. 갔다 온 뒤로 더더욱 그리워져버렸고,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살까. 


   짝사랑하던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모든 의미가 무색해지고 미친 듯이 가슴이 설레는 것처럼. 가기 전부터 앓아온 짝사랑은 다녀온 뒤로도 채워지지 않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더 키워버린 채 돌아오고야 만 나는. 그 적막하고 척박한 땅이 뭐가 그렇게 좋았다고. 그럼에도 가슴 시리게 사랑하는 아이슬란드는 메말랐던 오늘의 마음에 봄비가 되어 주었다. 아무래도 난 아이슬란드에 몇 번을 가더라도, 당신의 깊고 차가운 목소리에 빠져 죽을 운명인가 보다.

   오늘의 아이슬란드는 지구 정반대 편에 서있는 그림자에 위로의 말로 다가와주었다.  


아이슬란드 사진 중에서. 위로가 되는 적막함과 루피너스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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