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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Apr 18. 2019

벚꽃은 흐드러질 때 마저 아름답다.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맑은 하늘에 벚꽃비가 내리니 삭막한 빌딩 숲 공기가 일순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내려온 근처 회사원들의 시선도 모두 하늘로 향한다. 바람에 실려 꽃잎이 흐드러진 모양새가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다. 벚꽃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는 마지막을 고하는 순간이라, 약간은 서글픈 감정도 들지만. ‘벚꽃비’의 풍경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꽃'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때만큼이나.


벚꽃은 질 때가 더 이쁜 것 같아요.


   벚꽃비를 쳐다보며 속으로 하던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치워야 할 누군가에게는 고역이자 바닥의 물기와 함께라면 더더욱 고난이 될 수 있는 순간이지만. 보고 있는 시선에서는 그랬다. 문득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란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랐다. 원래부터 좋아하던 배우가 서글서글한 눈매로 툭 던진 말이라서. 그때는 그냥 멋있다 넘기고 말았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 말투와 눈빛이 머릿속에 가득 차는 것을 보아하니 드라마 속 그는 이런 느낌의 대상을 사랑한다 말하고 싶었나 보다. 벚꽃은 피고 지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아름답지 않은 면면이 없어 좋아할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름답기란,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허나 그 어려운 일을 벚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해내고 있는 중이다.


카페 밖 테라스에 앉아 십 분 남은 점심시간을 흘려보냈다.
멍하니 올해 벚꽃의 마지막을 감상하고 있는데, 어느샌가 앉아있던 곳까지 비가 적신다.
테이블 위에 내려앉은 꽃잎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햇볕에 눈이 부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 전, 지정환 신부님께서 소천하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푸른 눈의 외국인으로 사시는 일만으로도 고난의 연속이셨을 텐데, 임실을 치즈의 고장으로 살리시고 거동이 힘든 사람들을 끝까지 살피다 가셨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지난 60여 년 동안 가장 기억나는 순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오늘밖에 없다’고 하셨단다. 신부님께서는 매 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나 보다. 한결같이, 마지막까지도.  


   평범하고 무용한 삶을 살다 가게 되더라도 후회 없이, 아름답게 살다 스러지고 싶다. 이미 불완전하게 타고 남은 순간들도 숱하게 겪어왔지만 마지막의 회고를 통해 결국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삶을 살고 싶다. 매년 돌아오는 벚꽃의 흩날림을 바라보며 품은 생각치고는 거창하지만. 오늘만큼은 벚꽃처럼 살다 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의 남은 시간만큼은, 지금 이 순간처럼 좀 더 아름답게 흘려보내야겠다.


아름답게 피고, 또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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