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ly madly and deeply
어렸을 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를 꼽으라면 단연, 몽블랑이었다. 언제 처음 맛보았는지는 기억에도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달콤한 밤과 생크림의 조화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몽블랑은 당시 다른 케익들과는 겉모양부터 달랐다. 제누아즈 위에 하얀 생크림, 그리고 그 위에 과일을 올리는 일반론과는 차원이 다른 비주얼에 압도당했다. 크림이 국수가닥 모양으로 넘치도록 얹어져 있는 모습은 처음 본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빵은 거의 없고, 중심에 올려진 보늬밤 위에 가득하게 층층이 올라간 생크림과 밤 크림의 넉넉함이란.
그렇게 몽블랑에 마음을 빼앗긴 순간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제과점에 들르게 되면, 그 가게의 몽블랑부터 체크하는 습관이 들고 말았다. 일본의 편의점부터 파리의 앙젤리카까지 나라별로 가격별로 다양한 몽블랑을 접해왔지만, 지금도 처음 보는 곳에서 몽블랑을 발견하면 여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맛보곤 한다.
밤을 크림으로 먹는 것과 낱알로 먹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유독 알알이 벌어지는 군밤은 속껍질이 쉽게 벗겨지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느낌이 들곤 한다. 타기 직전까지 그을린 불기운을 품은 탓인지 삶았을 때보다 더 달고 진한 맛을 자랑하고, 씹는 맛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낱알이 크기도 하다.
군밤장수들이 사는 밤은 '옥광'이라는 품종으로 유독 크고 당도가 높다고. 잘 구워서 맛있기도 하겠지만, 군밤의 정체는 마트에서 우리가 사던 밤과는 아예 다른 밤이었다.
그 유명한 옥광밤은 아니더라도 껍질에 칼집을 넣어 오븐에 구워내면, 벌어지는 껍질 사이로 노란 속살이 드러난다. 단, 구운 밤의 속껍질을 곱게 벗겨 내려면,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밤을 재빨리 작업해야 하기에 손끝을 불어가며 신속히 껍질을 발라내야 한다.
주름진 표면의 껍질을 벗기느라 한숨을 더하다가도, 완성된 한 알을 통으로 입에 집에 넣고 나면 구수하고 달콤하고 보드랍고. 온갖 시름이 사라지는 포근한 기분이 든다.
한 때 우리에게도 밤으로 만드는 다양한 수제 가공품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하고는 한 동안 보늬밤, 일본식 밤 조림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몸에 좋다는 율피를 채로 먹을 수 다는 말에 혹해, 겉껍질을 벗기는 길고도 먼 여정을 시작하곤했다.
율피가 터지지 않게 밤을 까야하는 섬세한 작업은 무한한 시간과 손길을 요하는 지난한 작업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보다 더 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프랑스의 마롱글라세를 빼놓을 수 없다. 먼저 밤을 데쳐 속껍질까지 벗긴 뒤, 매일 끓여낸 시럽에 넣고 조려 밤에 투명한 시럽을 층층이 코팅하는 고급 과자로 알려져 있다. 며칠간 코팅하는가에 따라 각기 상황이 달라지는데, 보통 3~5회부터 일주일 정도의 코팅 기간을 말하곤 한다.
어떤 책에서는 12월 1일부터 하루에 한 번씩 밤 시럽 코팅을 진행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꺼내 먹는다고도 했던가. 어떤 가공품이든 밤의 속을 껍질로부터 벗겨내고, 달콤한 맛을 더하는 방식에 섬세한 손길을 아끼지 않는 것만큼은 감탄할 일이기도 하다. 다음에 파리에 간다면, 피에르 에르메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놓는 마롱글라세를 꼭 한 번 먹어보리라 다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먹기에도 아까운 제철 밤이지만, 일단 집에 삶아놓은 밤이 남아있다면 쉬운 과자로 만들어 보자. 늘 하던 대로 반을 갈라 속을 다 파낸 뒤에 체에 곱게 걸러주고, 간단한 시럽이나 꿀로 뭉쳐 경단처럼 빚어주면 된다. 원래 한과에서는 밤 모양으로 빚는다 하여 '율란'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밤 모양으로 뭉친 경단은 다시 시럽이나 꿀을 발라 잣가루나 원하는 토핑을 묻혀 내면 완성된다고. 밤 가루를 뭉칠 때 연유나 우유를 살짝 넣어도 좋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카스테라 가루 등에 묻혀주면 영양간식으로도 그만이다.
오븐으로 구워내는 군밤
Roasted Chestnut
ingredient
생 밤
method
1. 밤을 찬 물로 씻어 준다.
2. 밤의 겉껍질 볼록한 면에 X자(또는 길게 1자로)로 칼집을 넣어 준다.
(오븐에 밤을 구우면, 밤 속의 공기가 폭발하듯 터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겉껍질에 칼집을 넣어 준다)
3. 칼집을 넣은 밤을 물에 잡기도록 볼에 넣어 1~2시간 동안 불려 둔다.
4. 오븐을 220~230도로 예열한 뒤, 물에서 건진 밤을 칼집이 있는 쪽이 위로 올라가도록 오븐 팬 위에 올려 준다.
5. 오븐에서 대략 25분간 구워준 뒤, 구워낸 밤을 볼에 넣고 키친 타월을 올려 10~20분간 레스팅 해 준다.
6. 손으로 칼집을 중심으로 벌려 낱알을 까 주면 완성!
밤으로 쉽게 만드는 티푸드. 밤경단 혹은 율란.
Chestnut ball cake
ingredient
밤 200g (파낸 속 120g)
꿀 또는 애플 시나몬 시럽 1 1/2 Tbsp
계핏가루 또는 잣가루 혹은 원하는 토핑 약간
method
1. 밤을 껍질 채 20분쯤 삶아 준다.
2. 반 갈라서 티스푼으로 열심히 속을 파 준다.
3. 파낸 속을 체에 거르거나 과일 제스터로 곱게 갈아준다.
4. 갈아 내린 속에 시럽을 넣고 밤 모양으로 뭉쳐준다.
5. 뭉친 경단에 꿀이나 시럽을 바른 뒤 원하는 토핑을 묻혀주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