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밥도둑.
봄에 처음 나오는 새순은 '봄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오른다. 특히 혹독한 겨울을 난 몇몇은 생으로 먹기엔 세기에, 주로 숙채(간단히 데치거나 삶아 살짝 익혀 양념장에 무치는) 형식의 '나물'로 먹어 왔다. 그러다 보니 매년 우리의 봄철 밥상에는 냉이, 달래, 쑥, 취나물 등등으로 시작해 이름 모를 풀들까지 줄줄이 '나물'의 이름을 달고 올라오는데, 일일이 그 맛을 구별하며 먹어본 기억은 없다.
분명 봄나물 비빔밥의 이름으로 푸른나물을 한 그릇가량 먹었음에도 주로 간장과 기름으로 무치는 온순한 맛과 초장으로 무쳐내는 새콤 달콤한 양념 맛의 차이 정도가 어슴푸레하게 기억에 남을 뿐, 푸른 풀의 향기는 제일 먼저 잊히곤 했다.
넷플릭스의 음식 다큐 '소금. 산. 지방. 불'의 첫 번째 편 '지방'에서는 한 이탈리아 할머니가 그들의 고유 양념 바질 페스토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직접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절구(막자사발)에 잣을 넣고 빻아주는 것. 잣이 부서지다가 제형이 페이스트처럼 감기기 시작하면, 푸른 잎을 넣고 굵은소금을 넣어 짓이겨 준다.
바질 잎을 봉으로 짓이기다 보면 잎에서 천연 오일이 잣에 배어들면서 착착 감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곱게 간 파마산 치즈(또는 페코리노 치즈)를 더해서 섞어 주고 신선한 올리브유를 더해 완벽한 페스토의 질감을 완성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보니 지금은 누구나 블렌더에 다 넣고 휙 한 번에 갈아 만들어 먹지만, 그래서 그 맛이 달라졌다고.
돌절구에서 푸른 잎을 짓이겨 풍부한 향을 내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바질처럼 맛과 향이 뚜렷한 허브는 드문 편이지만, 그래도 나물로만 먹어 온 다양한 봄의 새순들 중에서도 바질처럼 요리의 양념장이나 소스로 만들어 볼 만한 향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뚜렷한 향기를 자랑하는 봄 새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봄나물은 초봄에 나오기 시작하는 풀에 준하는 것들과 4월 중순부터 꽃이 진 다음에 올라오는 나무들의 새순들로 나뉜다. 삼월에 구해지는 초봄의 새순들 중에 비교적 향기가 머릿속에 남는 것들을 모아보니 냉이와 달래, 깻순, 참나물, 쑥, 취나물, 풋마늘 정도. 본격적인 절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모든 테스트 과정이 그렇겠지만, 초반부터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일단, 절구에 넣고 짓이겨보니 우리가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맛과 향기가 전혀 다른 작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달래는 빻아보니 의외로 쪽파 같은 맛과 향이 났고, 참나물과 취나물은 그 특유의 향기가 되려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쑥은 짭짤한 소스로 풀기 어려운 맛이었고, 깻순은 너무 깻잎 향이라 뻔한 맛이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최종 후보에 오른 두 가지는 <냉이와 풋마늘>. 그리고 대조군으로 그린 페스토로 종종 사용되는 <파슬리>를 사용해서 먼저 허브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체로 페스토는 잣으로 대표되는 견과류와 파마산 치즈가 함께 어우러져 진한 풍미와 감칠맛을 내는 묵직한 양념장이라면, 허브 소스는 허브와 소금, 올리브유만으로 만드는 간단한 소스다. 절구에 냉이를 빻고, 소금과 올리브유를 넣어주면 끝.
따끈한 밥 한 공기에 허브 소스 한 티스푼 올려 쓱쓱 비벼주면, 감칠맛 도는 냉이 향기를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계란 후라이 하나 올려주면, 휴일 아침으로는 금상첨화.
김부각이나 김자반까지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한 끼가 완성된다. 파슬리같이 부드러운 허브는 굳이 절구에 빻을 것도 없이 칼로 곱게 다져주고, 겨울에 담가둔 유자 소금과 올리브유에 비벼주면 완성. 각종 리조또나 파스타, 키쉬, 카나페에 올려 간을 맞추며 향기를 더해준다.
가장 뚜렷한 맛을 자랑하는 것은 역시 <풋마늘>이다.
아직 마늘이 되지 못하였지만, 뿌리부터 잎 끝까지 온통 부드러운 마늘의 감칠맛으로 가득 차 있다. 맛은 마늘인데 소스의 빛깔은 너무 예쁜 연둣빛이라 더욱 신선한 느낌을 더해준다. 풋마늘 역시 냉이처럼 소금과 올리브유만을 더해 요리용 소스로 만들어도 좋지만, 마늘의 강한 맛을 잡아줄 수 있도록 파마산 치즈와 잣을 더해 페스토로 만드는 것도 추천한다.
직접 밥에 비벼먹기에는 페스토가 딱이다. 마늘의 맛과 잘 어울리는 새우, 연어나 닭고기를 넣고 볶음밥을 할 때 양념장으로도 안성맞춤. 풋마늘 페스토 역시 계란후라이와 함께 비벼먹기 좋은 양념장임에 틀림없다. 요즘 먹기 좋은 오이에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가 있다면, 한입 크기로 잘라 페스토에 비벼만 줘도 샐러드가 뚝딱 완성된다.
그동안 페스토를 활용해 만들어 온 우리의 대표 주먹밥이라면, <바질 라이스>였다.
소금, 후추, 엄마 참기름으로 밑간을 한 밥에 바질 페스토와 크래미 만으로 맛을 완성해서 동그랗게 쥐어주면 끝. 간단한 과정 대비 훌륭한 맛으로 우리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 해온 레시피 중 하나다. 이제 새로운 페스토의 등장으로 우리의 푸른 주먹밥에도 다양한 종류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풋마늘 페스토로 만드는 알싸한 주먹밥, 한식 밥상에 놓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 맛을 꼭 소개하고 싶다.
풋마늘 계란밥
Basil Rice
Ingredients
밥 1 공기
계란 후라이 원하는 만큼
연어 소보로 1~2큰술, 김자반 약간
풋마늘 페스토 1~2큰술
Method
1) 볼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 준다.
2) 위에 토핑으로 연어 소보로, 김자반(후리카케, 김부각 등) 등을 같이 얹어준다.
3) 2)에 풋마늘 페스토를 올린 뒤 잘 섞어서 비벼 먹는다.
* 집에 남는 피클이나 장아찌와 함께 먹으면 완벽한 한 끼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