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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16. 2024

길에서 돈을 줍는 마음

영국에서는 땅을 보고 걸으세요

며칠 전 개와 산책을 하다가 길에서 돈을 주웠다. 동전이 하나 떨어져 있길래 허리를 굽혀 집으려는 순간 1m쯤 앞에 두어 개가 더 보였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얼른 주웠더니 어라? 50cm 옆에 또 2개가 더 있다. 날름 집어 들다가 순간 '이거 꿈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동전을 주우면 걱정거리가 생기는 뜻이라던데, 나는 지금 행운을 줍는가, 걱정을 줍는가? 철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다가, 만약 꿈이라면 주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행동경제학적인 가정을 하게 된다. 결론은 '줍는다'였다. 


꿈속에서 볼을 꼬집어 볼 때가 많다. 꿈인가 생시인가. 하나도 안 아프다. 하지만 그 몇 초뿐. 돌아서면 꿈인 것을 잊어버리고 상황에 몰두한다. 그러니 내 눈앞의 동전이 설령 꿈속 허깨비라고 해도 일단은 줍고 당장의 기쁨을 만끽하자, 지금 이 순간을 살자, 하는 자기계발론적인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산책을 하다 보니 동전이 또 떨어져 있다. 이번에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같은 사람이 떨어뜨린 걸지도 모른다. 이삭 줍듯 동전을 싹 다 주웠다. 자그마치 1.22파운드! 한국 돈으로 치면 2,070원이다. 모두 주머니에 넣었다. 걸을 때마다 크기도 색깔도 가격도 다른 여러 동전들이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영국에 사는 10년 동안 돈을 주운 적이 매우 많다. 한국보다 현금 사용 비율이 높은 까닭이다. 대개는 하나씩 줍곤 하는데 1펜스짜리가 가장 많다. 한국 돈으로 17원쯤이다. 엄밀히 따지면 '불로소득'이지만 땅을 보고 걷다가 줍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기에 사실은 '로소득'이다(라고 우기고 싶다).  


그렇게 얻은 17원의 행복. 영국에서 이 동전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돈을 주워 모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아주 작은 행복을 적립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된 것 같았다. 행복은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돈을 줍는 마음은 소확행을 느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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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2년 전 경험 삼아 시작했던 주식 투자율이 -95%라고 말한 적 있던가?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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