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댕이, 엄마가 될 기회가 사라지다
개가 말을 하면 좋겠다. 자기들끼리 모여 공동체도 만들어 대표도 뽑고 여러 사안에 대해 입장발표를 해주면 참 좋겠다. 이를 테면 이렇게?
견권을 무시하는 중성화 수술,
우리는 거부한다!
600만 동지 개여, 함께 투쟁하자!
결! 사! 반! 대! 중! 성! 화!
그랬다면 나는 두말 않고 그들의 의견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개들은 말이 없고 수술을 시키는 것이 옳은지, 안 시키는 게 맞는지는 반려인이 판단해야 한다. 오랜 시간 자료를 찾아 뒤졌다.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대한민국처럼 아파트와 도시로 대표되는 주거환경에서는 수술을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많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찬성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인간 좋자고 저지르는 만행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듣다 보면 다 맞는 말 같고 팔랑귀인 나는 갈대처럼 휘청이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결국 결심을 했다. 오늘 꼬댕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켜줬다. 수술을 결심한 건 꼬댕이가 건강하게 내 옆에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여자 개의 경우 나이 들면 자궁축농증이나 유방종양 같은 질환에 걸리기 쉽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데려가기 전 아침 산책을 나갔다. 보슬보슬 봄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꼬댕이는 몇 시간 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 한 채 룰루랄라 즐겁기만 했다. 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니 안쓰럽게 느껴져 내 마음만 착잡했다.
원래 계획은 한 번 정도는 강아지를 낳게 한 다음 수술을 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1년에 두 번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 가족은 매번 다른 일정이 생겨 남자개를 소개해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보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꼬댕이가 만 4살이 되어서야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려견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결국엔 사람의 이기심일지 모른다. 슬프기 싫어서, 기쁨을 오래 만끽하고 싶어서. 그것이 개에게도 좋은 일일까? 개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살면서 수캐와 재미 한번 못 보고, 뱃속에 강아지를 품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수술대에 올라가는 게 개한테는 어떨까.
개는 1만 년 전쯤 농업이 정착되기 전 가축화가 된 유일한 동물이었다고 한다. 브라이언 헤어, 베네사우즈가 가 쓴 책『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따르면 야생 늑대 중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것들이 가축화되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다정함을 다 주고도 모자라 매일 일정량의 귀여움으로 반려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개들 이건만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을 하게 된 점이 무척 미안했다.
꼬댕이는 아침 8시 30분에 병원에 갔다가 오후 3시가 넘어셔야 집에 왔다. 간호사 품에 안겨 나오는 꼬댕이를 보니 귀와 꼬리가 다 내려가 있었다. 온몸으로 "나 지금 힘들어요"를 외치는 듯했다. 넥카라 대신 의료용 옷을 입고 돌아왔다. 간호사가 잭 러셀 테리어는 에너지가 넘쳐서 넥카라보다는 그게 나을 거라고 추천했기 때문이다.
반려인으로 나는 결심을 했고 수술은 이루어졌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후회가 아니라 최대한 회복을 빨리할 수 있게 돕고 꼬댕이와 더 행복해지는 거다. 닭고기를 푹 삶아 먹여 주었다. 꼬댕아, 얼른 회복하고 이 풍진 세상 재미나게 살아보자꾸나. 아침 산책할 때마다 만나는 루 서방과 알 서방에게 이제 침 그만 흘려야지. (루 서방의 본명은 루틴 , 알 서방 본명은 알피. 모두 사윗감으로 점찍어 두었던 녀석들이었다. ㅠㅠ)
* <개새육아>는 주 2회 발행을 목표로 합니다(만 종종 밀려요 ^^;;). 같은 주제로 개 이야기와 새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