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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Mar 31. 2024

ESFJ 집사와 다중앵격 앵무새

우리 집에서 가장 비위 맞추기 어려운 존재가 반려동물 앵순이다. 다른 가족들은 엄마 눈치도 보고 기분도 맞춰주고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앵순이는 말도 안 통하고 눈치코치도 없다. 본인 기분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말겠다고 고집부린다. 옹고집보다 무서운 새 고집이 있어 기분 맞추기가 힘들다.



눈치 없는 고집불통 


앵순이와 같이 살다 보면 다양한 새 고집을 마주하게 된다. 오빠들이 공부하는 책상에 드러눕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펜까지 뺏으며 공부를 방해한다. 누워서 떡 먹기도 아니고 누워서 펜 돌리기를 하려고 그러나. 펜은 왜 자꾸 가져가는 건데?


"앵순아. 오빠들 이제 고등학생이야.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라고!"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뜻한 오빠 손에 벌러덩 누워, 공부해 보겠다는 오빠 마음을 들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새 집중력이 오래가지 않아 금방 싫증을 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빠들 공부하는 옆에서 눕방을 선보이며 세상 편한 새 팔자를 누리고 있다. 누워 자는 모습도 비딱하니 불량스럽다.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인간이 불쌍해 보이고 조류로 태어난 앵순이가 더 부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날개 달린 천사의 목욕 방법


앵순이가 고집하는 목욕 방법이 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꼭 목욕한다. 설거지할 때 엄마 팔을 타고 물이 떨어지는 싱크대로 진격한다. 설거지 중이라 앵순이를 어깨 위로 올려놓으면 또 팔을 타고 내려온다. 몇 번을 어깨 위에 올려두어도 목욕에 필이 꽂힌 앵순이를 말리기는 역부족! 결국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화장실에 가서 목욕물을 받아준다.



문제는 지금부터 엄마는 물벼락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앵순이는 목욕을 할 때 꼭 엄마 손을 잡고 목욕하는 습관이 있다. 예쁜 목욕통과 편한 목욕통을 종류별로 제공해 주었지만 엄마 손 위에서 하는 목욕만 고집한다. 이런~ 새 고집!



물 위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날개털도 머리 감고, 난리법석이다. 옆에 있는 엄마는 앵순이가 뿌린 물벼락을 그대로 맞는다. 얼마나 오두방정을 떨면서 목욕하는지 엄마 얼굴까지 물이 튄다. 앵순이가 깨끗해질수록 엄마는 축축해진다.



목욕 후 등을 돌리고 수건걸이에 앉아 있다. 삐진 게 아니고 기다리는 게 있어서다.



바로 헤어 드라이기!

건조하고 따뜻한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목욕보다 드라이기 바람을 더 좋아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 적이 있다.  안에서만 살다 보니 창공을 가르며 날고 싶은 욕구를 헤어 드라이기 바람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강한 바람에 놀라 피했지만, 이제는 바람을 즐길 줄 아는 앵무새가 되었다. 바람 맛을 아는 새의 본능을 일깨워준 물건이 헤어 드라이기다.



목욕과 바람 둘 중 어느 게 좋냐고 물으면 앵순이는 아마 바람이 더 좋다고 할 것 같다. 헤어 드라이기의 바람 맛에 중독된 후로 더 목욕을 자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 오히려 1일 1 목욕을 한다. 쌀쌀한 날씨에 뜨끈한 사우나 느낌을 주는 온풍이 좋아서일 것이다.




소심한 성격의 최고봉


고집이 센 것에 비해 성격은 매우 소심하다. 말 그대로 새가슴이다. 조그만 소리나 빠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줄행랑을 친다.



거실에서 "뿌웅~" 아빠의 방귀 소리가 크게 났다. 다른 가족들은 일제히 더럽다며 웃는데 절대 웃어넘길 수 없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앵순이다. 방귀 소리에 놀라 죽어라 도망친 것이다. 앵순이의 격한 반응에 방귀 뀐 아빠가 민망해한다. 다들 웃을 때 앵순이 혼자 사력을 다해 화생방 대피 훈련을 했다. 인간들에게 방귀는 냄새가 문제인데 앵순이 에게는 소리가 문제였다. 소리에 극 민감한 성격 때문에 내 집에서 방귀조차도 눈치 보고 껴야 할 판이다.



환절기에는 앵순이가 놀랄 일이 더 많아진다. 가족들의 기침과 재채기 소리에도 죽어라. 나 살려라 도망가기 때문이다. 재채기 한 번에도 앵순이를 놀라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 모두 입을 다문 상태에서 재채기와 기침을 하는 습관을 키우게 되었다. 새를 키우는 게 아니고 모시고 사는 거 같다. 모시고 살아도 왜 이렇게 즐겁지? 심지어 행복한 기분마저 든다.



자기 몸은 깔끔하게 관리하지만 머문 자리는 항상 더럽고, 자기주장은 강하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하며, 필 받으면 옆을 보지 않고 직진하는 성격을 지닌 앵순이다. 흥분했을 때는 온 동네가 떠나가라 목청 높여 짹짹거리지만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인형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숨어있으며 주인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성격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앵순이는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중인격(人格) 아니 다중앵격(鸚格)이다. 다중앵격 앵무새를 키우는 ESFJ 성향인 집사는 타인의 감정에 이입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앵무새와 더불어 함께 다중인격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남편 曰

"엄마가 앵순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둘이 성격이 점점 똑같아지는 것 같아."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 나도 앵순이처럼 모시고 살란 말이야! 짹짹!





*<개새육아> 매거진은 주 2회 발행합니다. 개이야기와 새이야기를 번갈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동물가족 이야기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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