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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Apr 18. 2024

한밤중 고슴도치 습격 사건

우리 집 개의 적

한밤 중에 고슴도치가 나타났다. 동물원에서도 몇 번 만나본 적이 없는 동물. 그래서 처음엔 고슴도치인 줄도 몰랐다. 녀석은 영국 시골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 몸을 동그랗게 말고 꿈쩍도 안 했다. 제 딴에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놀라서 그러고 있겠지만 그걸 보는 나 역시 카오스(일종의 멘붕)이긴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거 맞아? 공 아니야?"


가시공 같은 고슴도치를 살피며 든 생각이었다. 신기함도 잠시. 진짜 큰 문제가 들이닥쳤다. 우리 집 개 꼬댕이가 고슴도치를 보고 흥분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멍~ 멍~" 우아하게 짖던 꼬댕이가 새로운 생명체 앞에 사냥개 ( 젝 러셀 테리어는 여우 사냥개로 개종된 품종) 본능을 발휘했다. "왈왈왈왈! 왈왈왈왈!"  


우리 가족이 한밤 중에 마당으로 뛰어나갔던 것도 평소와는 달리 날카롭게 짖는 개소리 때문이었다. 나가보니 꼬댕이는 그것의 실체도 모른 채 공격을 하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제법 무서운 얼굴을 하며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하듯 손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물어뜯을 기세로 덤볐다. 공격을 하는데도 찔리고 당하는 건 꼬댕이였다. 



고슴도치를 몰라본 꼬댕이는 에미 에비도 몰라봤다. 나와 남편이 꼬댕이를 안으려 하자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라고 짖으며 고슴도치에게로만 직진했다. 그러다가 나도 무릎을 고슴도치 가시에 찔렸다. 겨우 둘 사이를 분리시켜 안고 들어왔더니 역시나. 얼굴이랑 몸이 가시에 찔려 꼬댕이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가정에 한밤중 고슴도치라니! 꼬댕이를 집안에 들여놓은 뒤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삽으로 고슴도치를 퍼담아 마당 뒷문을 열고 20미터쯤 옮겨놨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나무에 풀밭이 나온다. 또 들어오면 어쩌지?  


아니나 다를까. 처음 고슴도치가 등장한 이후 녀석은 심심하면 마당에 나타나곤 했다. 어디로 들어왔을까. 울타리 아래로 기어 들어왔나, 아니면 담을 넘어왔나? 고슴도치에게 그런 능력이 있던가? 어쩌면 우리 집 마당에 아예 보금자리를 차린 건지도 몰랐다! 


터그놀이 하는 꼬댕이 - 고슴도치와 싸울 때는 상황이 긴박하여 사진 없음 주의!


꼬댕이는 날이 좋으면 마당에서 한두 시간씩 놀다 들어온다. 그럴 때 고슴도치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왈왈거렸고 습격을 했으나 매번 당해서 찔리고 다쳤다. 그런데도 용맹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공격해 봤자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학습할 때도 되었건만 꼬댕이는 그걸 못 배웠다. 


그래서 한동안 나만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고슴도치 때문에 사나워지는 개를 데리고 들어와야 하는 것도 곤욕이었고 그런 뒤 밖에 못 나가게 하는 것도 힘들었다. 야생 고슴도치는 균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얻어들은 뒤 더 심해졌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고슴도치는 달팽이나 민달팽이를 즐겨 먹는다. 우리 집에 찾아오는 이유도 먹을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달팽이는 귀엽지만 마당에 있으면 애써 심어 놓은 딸기 같은 수확물을 다 먹는다. 그런데 고슴도치가 나오자 딸기가 살아났다. 생태계란 이런 것인가. 먹고 먹히는 관계, 공격하고 공격당하는 사이 적절한 균형이 맞춰지는 것. 그래, 고슴도치 너 역시 태어난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처음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올해에는 이 가시 달린 짐승과 몇 번이나 마주하게 될까. 꼬댕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밤에 마당으로 내보낼 때는 미리 순찰을 돌기도 하지만 미연에 방지하기가 어렵다. 


오늘밤에도 고슴도치가 나타났다. 그런 개를 데리고 들어오려면 맨 손으론 안된다. 오븐용 장갑을 끼고 밖에 나가 개를 달랑 들었다. 꼬댕이의 양 앞발에 고슴도치 가시가 몇 개 딸려 왔다. 역시 여기저기 붉은 피가 선연했다. 아이고, 고슴도치야 너도 이젠 배울 때가 되지 않았니. 이 집에 들어오면 개지랄하는 개가 한 마리가 있다는 것쯤은 알면 좋으련만!!


고슴도치 한 마리 몰고 가세요~~~




* <개새육아>는 주 2회 발행을 목표로 합니다(만 종종 밀려요 ^^;;). 같은 주제로 개 이야기와 새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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