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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y 10. 2024

영국에서 조미김은 과자예요

입이 심심할 때 김? 

한국의 김이 세계적으로 인기라는 뉴스가 자주 들린다. 해외 살이 15년 동안 K-pop, K-drama가 유명해지다가 이젠 K-food까지 이름을 떨치니 절로 어깨에 뽕이 들어간다. 이런 게 국뽕인가! 살기가 훨씬 편해지고 있다. 


영국에 왔을 때부터 한국산 조미김은 코스트코에서 대용량으로 팔았다. 행복했다. 육아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김이 없었다면 21세기 바쁜 일상을 헤치고 살아가는 우리 엄마들은 애를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밥에 김만 싸줘도 오물오물 먹는 아이를 보며 김 예찬론을 펼치길 여러 차례였으니 말이다. (자매품 계란밥!) 

  

그런데 영국 마트 내 매장에서 김의 위치가 묘하다. 감자칩을 비롯한 각종 과자 옆에 있다. 코스트코뿐 아니라 중국 마트에서도 조미김, 김자반 등 은 스낵류로 분류되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스코틀랜드에 한국 마트는 없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김


중국마트 - 오른쪽 위 세 칸이 한국 김


하루는 코스트코에서 김을 사간 한 영국인 가족을 본 적이 있다. 아이가 계산도 하기 전에 김을 뜯어 한 장, 한 장씩 먹기 시작했고 부모는 계산하고 먹으라고 말리는 광경이었다. 짭조름한 걸 밥도 없이 먹고 있는 모습에 내 입 안에 나트륨의 향기가 퍼지는 것만 같았다. 밥 어딨어? 밥? 


그러다가 딸들이 먹는 과자 봉지를 살폈는데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조미김의 소금 함량은 100g 당 1.18g인데 프링글스(감자칩)는 100g당 1.2g, 다른 크래커는 1.3g이었다.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김을 한 봉지 뜯으면 4 식구가 한 끼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담겨 있는데 17g이다. 


조미김이 가장 안 짜!


과자로 감자칩 봉지를 먹느니 한 봉지를 뜯어먹는 훨씬 짜다는 결론이 나자 '나도 입이 심심하면 과자 말고 김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물론 한국인들은 김을 먹다 보면 밥 생각이 나고 그러다 보면 김치도 먹고 싶어지겠지만.  


물류가 발달했으니 제품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해지기 쉽다. 이때에 그 나라의 문화까지 전달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김을 제대로 먹으려면 한국인이 먹듯 식사 시간에 밥에 얹어 먹거나 다른 반찬과 먹어야 한다. 하지만 '밥과 반찬' 문화가 아닌 이들은 그렇게 먹을 수가 없다. 빵에다 김을 싸 먹는 것도 코미디는 매 한 가지일 터.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과 비빔밥을 먹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밥과 고명, 소스를 한데 비벼서 먹어야 하는데 그들은 비비지 않고 고명 한 가지와 밥을 떠먹는 것이 아닌가! 비빔밥이 정체성을 달리하여 덮밥이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식문화를 쏙 빼고 음식만 전파되는 게 어색했지만 이젠 그래서 더 재미있다. 우리는 이런 걸 '현지화'라 부른다. 다음엔 어떤 한국 음식이 색다른 방식으로 나타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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