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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Nov 04. 2022

영국 초등학교 담임 면담 다녀오다

구구단도 헷갈리는 우리 딸

영국 스코틀랜드의 학교는 1년에 두 번 담임교사와 면담이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것을 "절호의 기회!"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는 내 애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혹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서도 없어, 시험도 없어, 당연히 성적도 안 나오니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저 잘하고 있겠거니 믿을 수밖에 없다. 


Primary 7학년인 둘째 딸 연두의 면담이 오늘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나이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도 가능해졌는데 학교가 바로 집 앞이기 때문에 나는 대면 상담을 신청했다. 교실에서 중년 담임교사 미시즈 스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연두 어머님. 자리에 앉으시죠. 연두에 대해 궁금한 거 있으세요?"


아이고, 다 궁금하죠. 샘. 


"요즘 수학을 뭐 배우고 있나요? 우리 애가 수학이 약해요."

"네, 도형도 하고 시간도 배우죠. 자릿수 커지는 사칙연산도 계속하고요. 근데 연두 수학 잘해요."


? 수학을 잘해요? 구구단도 맨날 헷갈리는데요? 사각형의 둘레를 구하라는 것과 넓이를 구하라는 문제도 구분 못해 틀리던데요? 지금 누구 이야기하시는 걸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에서 믿을 수 없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둘째 딸 연두는 수학을 잘할 뿐 아니라 아트에도 뛰어난데 특히 과학을 매우 잘하여 아카데믹하며 엔지니어링 쪽에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친구와의 관계도 좋고 무엇보다 유머가 가득하다고 했다. 


순간, 눈물이 나려 했다. 아이가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 좋아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연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영국 학교가 한국에 비해 기준이 헐렁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동안 딸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면 늘 다그치기 바빴다. 얼른 수학 문제집 풀어. 엄마는 기가 막혀. 4단, 8단 구구단도 헷갈리는 게 말이 되니? 구구단은 모든 셈의 기본이야. 그걸 못하면 분수고 확률이고 앞으로 아무것도 못해. 그러면서 은근히 첫째 딸과 비교를 했던 것도 같다. 언니만큼은 못해도 기본은 해야지. 내향적이라 말 수도 적고 남들 앞에서 발표나 제대로 할까 싶었는데 미시즈 스틸은 연두가 수업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똑똑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걱정하던 딸은 어디로 간 걸까. 


"저는 연두가 집에 오면 맨날 틱톡만 봐서 걱정했어요."

"아유, 틱톡 보는 거야 모든 집이 똑같죠. 저도 애가 넷인데 다 그래요."


10분 간의 짧은 상담을 마치고 교문 밖을 나섰다. 찬 가을 공기가 얼굴에 훅 다가와 물었다. 네 딸을 네가 안 믿으면 누가 믿니. 그러게.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고 잘 못하는 것 같아 차라리 유명 틱톡커 (혹은 인플루언서?)로 키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잘 자라고 있었다. 나만 그걸 모르고 있던 것 같다. 


점수화되어 나오는 시험 성적표가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랬으면 싶기도 하다.) 잘하고 있어요, 수업 시간에 잘 듣고 친구들을 잘 도와요, 같은 담임 선생님의 말이 전부인 영국 학교의 면담은 그래서 활짝 웃으며 돌아가는 부모가 더 많다. 그런 날 저녁이면 소셜미디어에 "I'm so proud of her or him" 같은 소감을 자주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닐까? 등수와 점수 따위는 옆에 내려 놔도좋지 않을까.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기만도 벅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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