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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Apr 24. 2017

집안일 아이와 함께 하는 영국 가정

독립성 키우는 과정이라 여겨

자녀가 있으신 분들에게 여쭤 봅니다. 아이에게 집안일을 제대로 가르치시나요? 함께 하시나요? 잠깐 도와달라는 것 말고요. 저부터 대답하면 "No"였답니다. 가끔 방 정리나 식탁에 수저 놓기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시킬 때도 있지만 자주는 아니었어요. 4인 가족이 살아 나가려면 매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요. 식사 준비에 청소, 빨래 같이 굵직한 것부터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자질구레한 일이 많잖아요. 아무래도 엄마인 제가 담당하는 부분이 크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나만 개고생?”      


문득 깨닫습니다. 남편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설거지나 빨래,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남은 건 아이들입니다. 만으로 10살, 5살이면 다 컸지 말입니다. 텔레파시가 닿았는지 그즈음 <EBS 육아학교> 페이스북 페이지에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도왔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데 그게 쌓이면 훗날 성공하는 삶을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였어요.  


EBS 육아학교 "자, 이제 장난감 정리는 네가 해" 동영상 보러 가기


옳거니! 이것은 하늘이 내린 메시지 같았습니다. 언젠가 미국, 영국 등에서는 아이들과 집안일을 나눠서 한다는 내용을 읽은 게 전구 불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영국 아이들은 어떤 집안일을 함께 하는지, 그건 또 무슨 의미인지 파헤쳐 보려고 해요. 그러고 나서 우리 집에 적용해 볼 거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의 성취감도 중요하지만 "엄마에게도 자유를!"이라는 구호가 숨겨져 있는 목적의식적인 작업이었답니다.   






먼저 영국 가정의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영국 엄마들 소피(Sophie)와 사라(Sarah)를 만났어요. 소피는 제 둘째 딸의 친구인 난시(Nancy)네 엄마랍니다. 직업은 미드 와이프예요. 저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기도 하고요. 사라는 첫째 딸의 친구인 몰리(Molly)네 엄마랍니다. 중고등학교 생물 교사예요. 먼저 소피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가까운 사이라 반말로 번역합니다.


Sophie Beesley with Nancy & Oliver

 "사실 지금은 아이들이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아. 그래도 자기 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은 스스로 정리해야 해. 가끔 저녁 식탁 차리는 걸 돕기도 하고. 나도 이것저것 시키긴 하지. 아침에 일어난 후 침대 정리 같은 거? 근데 알잖아. 등교 준비는 늘 시간이 빠듯하니까 그냥 갈 때가 많지. 내가 하는 게 훨씬 빠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영국 가정이라고 책에 쓰인 데로 어릴 때부터 다 집안일 가르치고 하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집안일을 바라보는 인식은 확실했습니다.


"아이가 집안일 돕기를 배우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누군가 해주는 걸 당연히 여기게 될 거야. 버릇없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니까?! 어서 난시가 집안일을 기쁘게 도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  


소피는 아이들과 집안일을 나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엄마 편하자고 함께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각자 크면서 필요한 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집안일을 돕지 않았어요. 중고등학생 때 설거지라도 좀 할라치면 엄마가 못하게 하셨거든요. 결혼해서 평생 할 건데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고요. 신혼 때 빨래를 해야 하는데 세탁기 작동법도 몰라 헤맸던 기억이 있네요. 엄마의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미안해집니다. 그땐 부모의 헌신을 잘 못 느꼈었나 봐요. 이기적이었던 거죠. 


저와는 달리 소피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자주 도왔다고 해요. 집에서는 물론이고 친척이나 친구네 집에 식사초대를 받으면 전채요리와 본 요리 사이에 테이블 정리하는 것을 항상 도왔답니다. 이건 몰리네 엄마 사라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릴 때부터 청소기 돌리기나 빨래, 음식 만들기, 옷 다림질 등을 자주 했데요. 사라네 딸들은 10살, 15살이에요. 소피네와는 상황이 어떻게 다른 지 볼까요? 이제 막 친해진 사이라 존댓말로 번역합니다.


Sarah Reay

"우리 집은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온 가족이 두 시간씩 집안일을 함께 한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해서 평일에는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몰리는 화장실이나 주방 싱크대를 청소하고 다 된 빨래를 분류해서 정리해요. 몰리 언니 메디는 화장실을 포함해서 집 전체를 청소하고 설거지도 하지요. 첫째 딸은 저보다 집 청소를 더 잘해요."   


풀타임 직장맘인 사라는 주로 주말에 집안일을 몰아서 한다고 해요. 10대 자녀들과 다 같이요. 말이 두 시간이지, 내내 청소하고 빨래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힘든 일일 겁니다. 아이들이 군말 없이 따르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습관이 든 덕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용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지요. 간혹 집안일을 하기 싫으면 쉬면서 그 돈은 포기한다고 하네요. 사라는 가사도우미를 두 시간 부르는 것보다는 싸게 먹힌다고 농담조로 말하며 웃었습니다. 


<EBS 육아학교>의 내용에 따르자면 아이들이 집안일을 했을 때 용돈을 주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칭찬과 격려를 해주면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요. 그런데 영국의 현실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2016년 1월, <The Sun>이라는 매체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영국의 10대 2000명을 조사한 결과 약 88%의 아이들이 집안일을 도왔으며, 그중 47%의 아이가 일을 마친 후 용돈을 받는다는 합니다. 평균적으로 모든 일을 끝내고 10파운드의 용돈을 받는다는데, 약 15,000원 정도예요. 집안일 항목별로는 침대 정리에 2파운드, 설거지에 1.84파운드, 청소기 돌리면 2파운드, 세차에 3파운드 등이랍니다. 가장 돈을 많이 받는 건 아이 봐주기예요. 6파운드지요. 평균적으로 10파운드를 받으려면 서너 가지의 일을 해야겠네요.  


How much pocket money do you pay your kids for chores? 기사 바로 가기

 


집안일을 한 아이의 47%가량이 용돈을 받는 건 문화적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 독립하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지 않거든요. 아르바이트를 하던 정부 대출을 받던 해서 자신의 삶은 알아서 꾸려가야 해요. 그러니까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부모를 돕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아나갈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인 셈입니다. 집안일 자체와 그것으로 돈 버는 일 둘 다 말이지요. 자녀의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국 가정의 모습입니다. 






영국에 사는 몇몇 한국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대개 아이들은 크고 작은 집안일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즉, 제 주변엔 영국 가정이건 한국 가정이건 비슷했던 거죠. 저는 왜 여태껏 그러지 못했을까요. 성격이 급해서 무언가 시키고 나서도 아이들이 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아직 어리게만 보기도 했었고요. 뭘 할 줄 알겠어? 이러면서요. 안 되겠습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하루라도 빨리 계획을 세워 집안일을 아이들과 나누고, 가르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집안일을 시킬 때 무작정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 안 된다고 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수많은 일 중에서 아이들이 어떤 걸 흥미 있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아이와 논의하여 정하면 좋다고 합니다. 또 일별, 주별, 월별로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두는 것도 필요하답니다. 그래야 책임감도 생기고 <EBS 육아학교>에서 말한 것처럼 성취감도 생길 테니까요. 


결론에 이르니 "엄마에게도 자유를!"이라는 목적은 단시간에 달성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집안일을 함께 하는 건 단순히 피곤한 엄마를 돕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족 전체를 위한 책임을 나누는 것입니다. 제대로 하자면 오히려 제가 인내심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요. 소리 지르지 않고 잘 가르쳐 보렵니다. 일단 시작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에게도 (조금의) 자유가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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