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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15. 2017

매일 1.6km를 뛰는 영국 초등학생들

윈치버러 프라이머리스쿨 교장을 만나다 

“엄마, 오늘은 뛰는 게 좀 힘들었어요.”

“엄마, 저는 오늘 5분 30초 걸렸어요. 가장 빠른 기록이에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책가방을 벗어던지며 하루 보고를 합니다. 두 녀석 다 뛰는 이야기였지요. 큰 아이는 지금 6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1학년이랍니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올봄부터 각각 초등학교 5학년과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나이예요.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데일리 마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매일 1마일씩 달리는 체육 프로그램이지요. 단위를 바꿔 보면 1.6km나! 되는 거리를 달리는 셈입니다. 1학년부터 7학년까지 전교생이 예외 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게 가능할까, 저학년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학교 운동장을 뛰고 있는 Winchburgh Primary School 1학년 학생들


며칠 전 학교 오픈데이 행사에 갔습니다. 참관 수업 같은 거예요. 그날 둘째 아이와 함께 데일리 마일에 참여해 뛰었습니다. 자그마한 학교 뒤편 운동장을 20바퀴 돌아야 했는데 저는 정확히 7바퀴를 돌고 포기했답니다. 헐떡헐떡 숨이 차오르고 더 뛰었다간 심장에 무리가 갈 것만 같았거든요. 평소 운동이라고는 숨쉬기와 걷기 밖에 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겠지요. 하지만 만 5살인 1학년 아이들은 20바퀴를 거뜬히 뛰어냈습니다. 얼추 15분쯤 걸린 것 같았어요. 대단하고 대견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 눈에 하트와 별이 그려졌습니다. 그 속에 우리 딸도 끼어 있었으니까요! 


이 학교는 왜, 언제부터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학생들이 뛰는 걸 좋아하기는 할까요? 부모들은 또 어떨까요? 비가 와도 뛸까요? 이런저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윈치버러 초등학교 교장인 로즈비어에게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곧바로 교장실로 향했습니다. 




   


스코틀랜드 한 학교에서 시작한 <데일리 마일> 영국 전역으로 퍼지다


로즈비어는 이 학교에 온 지 올해로 40년째 된 베테랑 교사랍니다. 전교생이 140명밖에 되지 않은 작은 학교의 교장인지라 그녀는 학부모들과 가깝게 지냅니다. 친절하기도 하고요. 제가 데일리 마일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자 무척 기뻐했습니다.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게 절로 느껴졌습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한 시간 내내 그녀는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데일리 마일>은 윈치버러 초등학교에서 시작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탄생한 배경이 있더라고요. 


Mrs. F Rosevear - 윈치버러 프라이머리스쿨 교장, <데일리 마일>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야기는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장소는 스코틀랜드 스털링이라는 지역에 있는 한 초등학교지요. 어느 날 체육 시간이었데요. 자원 봉사자 한 분이 수업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본 수업을 하기 전에 워밍업만 했는데도 너무 쉽게 지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학교 측에 건의를 했고 체력 테스트를 해 보니 바닥 수준이었다고 해요. 운동장을 한 바퀴도 못 뛰는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그리하여 비만 방지와 체력 향상을 위해 하루에 1마일씩 뛰는 <데일리 마일>이 탄생했습니다. 한 달 정도 후 체력 테스트를 한 결과 월등히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 후 2015년부터 영국 전역에 이 프로그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현재 스코틀랜드 100여 곳을 포함, 영국 전역 520여 곳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매일 1.6km씩 뛰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요. 뛰는 시간은 수업 일과에 따라 담임교사 재량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정이 있을 때는 쉬기도 하지만 매일 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합니다. 물론 너무 춥거나 햇볕이 강할 때, 비가 많이 올 때는 제외고요. 



체력이 좋으면 학습능력도 올라간다  


아이들은 매일 뛰는 걸 좋아할까요? 우리 집을 먼저 살펴보면 첫째 딸은 좋아합니다. 워낙 에너지가 넘쳐 자주 움직여줘야 하는 어린이거든요. 학교에서 매일 몇 분에 뛰었는지 체크를 하는데 어떤 날은 12분, 어떤 날은 6분, 8분 제각각입니다. 아이들 몸 상태에 따라 걷기도 하기 때문에 편차가 큰 것 같습니다. 둘째는 잘 뛰면서도 어쩔 땐 힘들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저는 그 심정을 백 프로 이해합니다. 로즈비어는 데일리 마일이 단순한 체육 프로그램만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뛰고 나서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아이들은 너무 예쁩니다.
체력이 좋아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프로그램으로 사회성을 기를 수도 있고요, 
아이들 수업태도나 집중력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자료 사진 - 출처: http://www.thesun.co.uk/news/2668482


오늘 운전을 해서 학교 앞을 지나는데 둘째 아이네 반이 뛰고 있더라고요. 잠시 차를 세우고 지켜봤지요. 평소 투정과는 달리 가뿐히 뛰는 제 아이 모습이 보입니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가 뒤처진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뛰었습니다. 사회성을 기른다는 교장의 설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 같았습니다. 


프로그램 시행 후 교사들은 수업시간이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은 더욱 빛나고,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중력이 올라가면 그것은 고스란히 학습능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요. 이것은 단순히 교사들의 개인적인 느낌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017년 1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스포츠 과학 전문 기업인 피트메디아(Fitmedia)가 2016년 4월 런던에 있는 쿠퍼밀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76명을 대상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했답니다. 그 결과 15주 동안 데일리 마일에 참여한 아이들의 *SATs 시험 성적이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고 해요. <읽기> 영역에서 전문가들은 67%의 아이들이 국가 평균을 넘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실제 결과는 92%의 아이들이 넘었답니다. 기대치보다 25% 높은 수치이지요. <쓰기>, <수학> 영역에서도 기대치보다 17%씩 높게 나왔습니다. 


*SATs: 잉글랜드 초등학교에서 치르는 국가 커리큘럼 평가 시험 



스코틀랜드의 교육 정책을 따르다    


로즈비어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 데일리 마일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즐기지 않았다면 오늘까지 지속될 수 없었을 거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쯤에서 한국 엄마의 마인드가 콕 박힌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아이들의 체력을 왜 공립학교가 신경 써야 할까요? 방과 후 스포츠센터 같은 곳에서 해도 되잖아요." 


Mrs. F Rosevear - 윈치버러 프라이머리스쿨 교장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교육 정책입니다. 아이들의 학업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체력이나 정신적인 부분, 사회성 등등 전인 교육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모든 부분에 대한 것이지요."


솔직히 저는 다소 감상적인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체력을 잘 키워주는 것도 교육자가 할 일이다는 식의 답변 말이지요. 하지만 로즈비어는 교육 시스템을 이야기했습니다. 정해진 원칙을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살짝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면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경쟁 심한 우리나라라고 교육 원칙에 공부만 하라고 되어 있진 않을 겁니다.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학교라! 감탄하고 있을 때 교장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녀나 그녀의 자녀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학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해를 거쳐 정책이 수정되었는데 전인 교육 정책은 비교적 최근에 바뀐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미래의 기획도 정해졌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교육 정책은 왜 그렇게 바뀌었나?" 이것을 알아보려면 정부 쪽 담당자를 만나야 할 것 같은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한 번 도전해 보지요. 우선 바로 다음에는 영국 엄마들을 만날 겁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로즈비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국말로 써놔서 잘 전해질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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