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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섭 Mar 19. 2022

'빌 캠벨,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 에릭 슈미트

이 책의 원제는 Trillion Dollar Coach 이다. 빌 캠벨은 애플, 구글, 인튜이트, 페이스북 등의 유수의 실리콘밸리 기업의 경영진의 '코치'를 맡았던 인물이다. 생전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다녔기 때문에, 경영 전면에 드러나거나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지는 않았다. 나를 비롯해서 이런 사람이 존재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의 코치이자 절친이었고 (잡스가 처음에 애플에서 쫓겨날 때, 이사회에서 이를 반대했던 몇 안 되는 인물이었고,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도 함께 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 등 구글 경영진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빌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프 베조스도 없었을 것이다. (KPCB가 아마존에 투자한 이후, 제프 베조스를 CEO로 남길 것인지 갈아치울 것인지를, 존 도어가 빌 켐벨에게 아마존을 살펴보고 결정해달라고 했음)


아닌 게 아니라, 이 '코치'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애플, 구글, 아마존 등의 성공이 있었다고, 이런 기업들의 인사들이 입을 모은다. 이렇게 빌 캠벨이 만들어낸 기업들의 가치가 Trillion Dollar에 이르기 때문에 이 책의 원제도 붙었다. 


빌 캠벨은 원래 정말 '코치' 출신이다. 그는 풋볼 선수였으며, 대학교 풋볼팀 감독을 역임하다가, 늦게서야 산업계로 넘어온 특이한 인물이다. 풋볼 코치였을 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연민이 너무 많아서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이지도 못했고, 의사결정을 모든 팀원들에게 이해시키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이후로 애플의 이사와 인튜이트의 CEO 등을 맡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이후에 빌 캠벨이 활약했던 '경영자의 코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코치'라고 하지만 빌 캠벨의 역할이 단순히 CEO와 임원들의 코치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상당히 정의하기가 애매한 역할인데 이사 정도의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개별 경영진 코칭도 하면서, 일종의 'free role' 에 가까운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사회에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도 하고, 중요 직책의 사람을 뽑을 때 '최종 관문' 인터뷰어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 요소요소에서 활약하면서 회사 전체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경영진들이 체스를 두는 사람이라면, 빌 캠벨은 체스판 밖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정도의 언급이 있다.)


이 책은 빌 켐벨의 사후에 기획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코칭을 받거나 친분을 가졌던 수십 명의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코치'가 가졌던 원칙이나 생전의 모습을 파악했다. (흥미롭게도 인터뷰 대상이었던 에릭 슈미츠부터, 선다 피차이, 팀 쿡, 셰릴 샌드버그, 존 도어, 수전 워치스키, 비노드 코슬라, 마크 안데리슨 등의 정말 쟁쟁한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그가 끼쳤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경영자들에게 원칙과 사람에 대한 진심을 강조하고,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하고, 공동체 정신, 인간적 헌신, 기업 경영에도 사랑과 인간애를 가지고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신선했다. 적극적 경청을 통해 본인이 답을 제시하기보다, 상대방 스스로가 답을 찾도록 하기. 사내 정치를 없애고, 사람들 사이의 감정을 중시하기. 어쩌면 풋볼팀의 코치였던 그만이 할 수 있는 경영 혹은 코칭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빌 캠벨 본인부터 인생을 사랑하고, 이타적이면서도,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빌 캠벨의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책은 약간의 용비어천가 같은 느낌이 없을 수 없다. 인터뷰 대상자들도 돌아가신 분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도 빌 캠벨의 장점과 잘했던 일 등을 중심으로만 서술되어 있고, 실패나 코칭에 있어서의 실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위대한 코치라고 해도 그의 코칭이 항상 만능은 아니었을 텐데 이런 부분이 없는 점은 아쉽다.


또한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특수한 역할을 아주 예외적으로 잘 해냈기 때문에, 이 빌 캠벨이라는 사람의 역할, 성과, 일하는 방식을 얼마나 일반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빌 캠벨은 구글과 에릭 슈미트의 경영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후에 에릭 슈미트가 '빌이 살아 있었더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하고 자문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를 거꾸로 읽자면, 구글 같은 거대하고 파워풀한 기업도 빌 켐벨과 같은 코치를 또 구하지는 못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었고, 또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풋볼 코치였던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위대한 경영 코치에 이를 수 있게 되었는지는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있었더라면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타트업 멘토링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이 책을 읽었다. 애플, 구글을 만들어낸 코치라고 하니, 거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하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참고할만한 부분은 많이 없었다. 이 책에서 코치의 역할은 투자자로서의 멘토보다 훨씬 더 딥 다이브 하는 역할이다. (중요 회의에 팀원이나 임원으로서 직접 참여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또한 빌 캠벨 그 인간 자체로 'full package'일 때 이런 방식의 코칭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예를 들어, 빌은 말을 할 때 욕설도 많이 하는 입이 상당히 거친 스타일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빌의 본심이 상대방과 회사에 대한 무한한 애정, 사랑, 인간애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비속어조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코칭, 혹은 경영의 원칙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느꼈지만. 한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라면 아마도 모두 공통적으로 또 한 가지를 더 느꼈을 것이다. "'우리 회사에도' 혹은 '나에게도' 빌 캠벨과 같은 코치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것 말이다. 그러면 나도 좀 더 나은 경영자가. 우리 회사도 더 나은 회사가 될 수 있을 텐데 하고.


(2021년 1월에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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