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섭 Mar 12. 2022

'규칙 없음', 리드 헤이스팅스

이상적인, 하지만 따라하기는 어려운 넷플릭스의 혁신적 경영 원칙

‘규칙 없음’. 이 책은 넷플릭스의 파격적인 경영 원칙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엄격하고 촘촘한 사내 규정에 의거하여 굴러가는 대부분의 회사와는 달리, 넷플릭스는 ‘규정이 없음을 규정으로’ 한다. 그럼에도 혁신적인 성과를 내면서 지금의 넷플릭스가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제는 너무 유명한 책이어서, 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특히 스타트업들 중에서 조직 문화나 HR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치고 이 책을 읽어보지 않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함께 경영서를 읽는 트레바리 모임에서도 이 책을 꼭 같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이다. 역시 이번에도 대표님들이 두 번째로 읽고 오셨다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 경영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기업의 모습을 그린다고 할 수도 있다.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며, 휴가나 비용과 같은 자잘한 사내 규정을 없애고 (무제한 휴가도 갈 수 있다), 직원들에게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준다. 직원들은 ‘무엇이 회사에 가장 유리한가’를 기준으로 알아서 행동하고, 개별적인 프로젝트를 상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실패해도 문책당하지 않는다.) 


회사 내의 비밀도 없애면서 모든 직원들이 회사의 재무 상황이나 경영 실적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고, 직원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극도의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업계 최고의 인재만을 최고의 연봉을 주고 영입하며, ‘적당한’ 수준의 인재는 키퍼 테스트 (‘이 사람이 내일 그만둔다고 하면, 우리가 붙잡을 것인가?’)에 의해서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 이 키퍼 테스트의 대상은 경영자 본인도 예외는 아니다. 등등. 


넷플릭스의 이 경영 원칙은 논리적으로 완결하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꼈던 것이었다. 이런 원칙들은 개별적으로 떼어 놓고 보면 성립하지 않거나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하지만 이런 원칙들이 총합을 이룬 ‘전체 패키지’로서 놓고 보면, 정말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완결성을 가진다. 아니, 어찌 보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경영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생각마저 가지게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영 원칙들이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 넷플릭스의 원칙을 다른 회사들이, 특히 스타트업들이 적용하기가 어렵다. 벤치마킹하려면 ‘전체 시스템’ 자체를 가져와야만 하고, 일부 원칙만 섣불리 따라 하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사내 규정을 없애며,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주고, 비밀을 없앨 수 있는 이유는 넷플릭스가 극도로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극도로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슈퍼스타와 같은 인재를 그에 맞는 높은 연봉을 보장하면서 모셔올 수 있는 시스템과, ‘적당한’ 인재는 내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이들은 자율성, 높은 투명성 등에 의해서 회사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즉,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이 물고 물리는 관계이다. 모든 요소가 매우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선순환 구조를 일으킨다. 이 톱니바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이 선순환 구조는 발동하지 않고, 오히려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이것이 어려운 지점이다. 이번 트레바리 모임에서도 몇몇 대표님들께서 기존에 이 책을 읽고 몇 가지 원칙을 회사에서 적용해보려고 하다가, 큰 부작용과 함께 실패를 맛보았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셨다. (예를 들어, 솔직한 피드백을 적용했다가 직원들이 서로 상처를 입고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했다..등)


사실 넷플릭스도 이러한 경영 원칙과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 책에는 그런 시행착오들이 여러 사례와 대표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자기 고백과, 여러 직원들의 가감 없는 실명 인터뷰 (‘극도의 투명성’)를 통해서 잘 드러나 있다. 어떤 부분들은 현재 시점에서도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고민 중이라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지점들도 자율성, 극도의 투명성, 높은 인재 밀도를 바탕으로 함께 해결해나가면서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문화가 가진 진정한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이런 원칙을 시작해야 할까? 특히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말이다. 토론에 참여한 대표님들이 가장 관심이 많으시면서도 어렵다고 하셨던 것이 바로 ‘인재 밀도 (talent density)’를 높이는 것이다. 모든 기업들, 모든 경영자들은 인재 밀도를 높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너무도 어렵다. 나는 발제문에서 이 인재 밀도를 높이기 위한 요소를 아래와 같은 3+1으로 구분해보았다. 

특급 인재를 어떻게 모셔올 수 있는가 

특급 인재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평범한 인재를 어떻게 내보낼 수 있는가

(+ 인재 여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것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특히 여기에는 책에서는 충분히 강조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특히 스타트업에게) 희소한 자원이 필요하다. 바로 돈이다. 


슈퍼스타와 같은 인재를 모셔 오려면 높은 연봉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특급 인재들이 회사에 계속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서 업계 최고의 대우를 회사에서 선제적으로 제공한다. (넷플릭스에서는 직원들에게 헤드헌터에게 자기 몸값을 알아보라고 장려하고, 시장에서의 몸값을 보장해준다. 그리고 비슷한 수준의 다른 인재가 현재 연봉을 낮게 받고 있다면 ‘선제적으로’ 연봉을 올려준다.) 더구나 최근에는 소위 '네카라쿠배당토'에서 시작된 인재 전쟁으로, 인재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재를 잘 내보내는 방식은 바로 ‘두둑한’ 퇴직금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도 역시나 돈이 들어간다.


어찌 보면 닭과 달걀의 문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딜레마에서 과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이번 북클럽에 스페셜 게스트로 루닛의 백승욱 의장님을 모셨는데 (루닛은 의료 인공지능 스타트업으로 현재 비상장 시장에서 1조 원 내외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비공식’ 유니콘이다. 루닛은 창업 초기에 공격적인 인재 채용 전략을 썼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성공을 낳았다), 루닛에서는 처음 카이스트에서 학우들끼리 개인적인 관계에 기반하여 공동창업을 하면서,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던 초기부터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투자를 유치한 이후에는 더 공격적으로 (유명 대기업과 연봉 경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최고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하셨고 말이다. 


또 다른 지점은 ‘한국에서’ 이런 문화가 잘 정착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다. 일단은 한국에서는 노동법상 해고가 어렵다.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직원들도 (예를 들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잘못) 여러 힘든 절차를 통해서 겨우 내보낼 수 있었던 대표님들의 여러 경험이 토론에서 공유되었다. 넷플릭스의 인재 밀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핵심 원칙은 ‘키퍼 테스트’인데 이는 채용과 해고를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법적인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많은 경영자들, 특히 HR 담당자들이 ‘한국에서는 이 책에 나오는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시는 이유이다. 


(이 지점에서 궁금한 것 하나. 한국에 넷플릭스 지사에서도 이 ‘키퍼 테스트’를 활용할 텐데, 한국에서는 인재가 아닌 사람을 해고한다는 원칙을 어떠한 절차를 통해서 지키는지가 궁금하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면 다들 공감할 듯.)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의 입장에서 회사라는 조직을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작은 회사를 이끄는 대표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우리 회사에서 내부적으로 이런 원칙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돌았고, 또 우리가 투자할 회사를 검토할 때 이런 지점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결국 이 ‘규칙 없음’ 원칙을 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 돈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 투자자의 역할이다. (적어도 그 회사가 자가발전을 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우리가 검토하는 극초기 스타트업들은 이런 구조를 제대로 갖추기 이전의 단계이다. 우리는 현재의 미성숙하고 미비한 초기 단계의 스냅샷만을 보면서, 여러 스타트업들 중에 어디가 높은 인재 밀도, 자율성, 투명성 등을 바탕으로 이런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 어려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우리 회사가 먼저 그런 혁신적인 회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