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에 대한 진지한 구도의 길
난 내 주짓수 실력에 대해서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주짓수 13년 차에 브라운 벨트를 달고 있지만, 브라운 벨트 이후에는 시합 성적도 별로 좋지 않고, 요즘에는 사실 시합에 출전하지도 않는다. 시합은 너무 스트레스도 크고, 또 브라운 벨트 이상은 생활 체육인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도 있다. 체육관에는 주로 흰띠와 파란 띠 밖에 없어서, 얘네들을 아무리 썰어봤자 실력에 대한 증명은 되지 않는다. 또 반대로 국가대표 관장님은 너무 넘사벽이시니 역시 내 실력 측정이 어렵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국내 정상급 퍼플벨트 선수와 스파링을 할 기회가 있었다. 몇 번 스파링을 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나름대로 비벼볼만 했다. 점수로도 그렇고, 내용적으로도 꽤 비등비등한 스파링을 했다. 스파링 전에는 사실 좀 겁을 먹었는데, 정작 도복을 잡아보니 그럭저럭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짬이면 이제 도복을 잡아보면 서로 대략 각이 나온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상대가 안되니, 내가 이렇게 전력으로 스파링 할 수 있는 것은 딱 한 번 정도다. 현실적으로 내가 최대 출력을 낼 수 있는 것은 4분 내외이다. ('이제 꽤 힘들어지는데..' 할 때 시계를 보면 대부분 4분 정도 경과해있음.) 5분이나 6분 스파링을 한 이후에는 체력이 방전되지만, 그래도 내가 출력을 유지할 수 있는 동안에는 아직도 주짓떼로로서 꽤 괜찮은 움직임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작심하고 최대 출력을 한번 내고 나면, 근육통과 피로감 등의 여파가 다음날까지 가긴 하지만..)
나는 20대 때부터 육체의 강함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해왔다. 단순히 몸을 크게 만들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막연하게 강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 길은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주짓수, 그리고 복싱까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강함에 대한 추구는 나에게는 어찌 보면 구도의 길과 같다. 사실 이런 강함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현실에서 거의 무용하다. 지금은 전국시대가 아니니까. 하지만 인생을 풍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때로 무용한 것들이다.
나는 요즘 그 강함에 대한 추구를 내 인생에서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육체는 계속 녹슬어간다. 매일 단련하는 사람은 육체의 미묘한 변화를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예전보다 몸에 시동을 걸기가 어려워진다. 어떤 때는 시동이 아예 끝까지 안 걸리는 날도 있다. 이런 빈도는 가면 갈수록 늘어난다. 처음에는 부인하려고도 해보고, 거스르려고도 해보았으나,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신 휴식과 영양 등 컨디셔닝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시간은 육체를 시들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노련함은 늘게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육체의 노화를 노련함으로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그 노련함으로도 커버가 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프로 운동선수는 그때 현역에서 은퇴한다. 나도 30대에서 40대가 되었듯, 또 머지않아 50대가 될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강함에 대한 추구를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 구도의 길을 멈춰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강함에 대한 진지한 추구는 여기까지 나를 이끌었다. 이제 40줄에 접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상급 퍼플벨트 주짓수 선수와 비등하게 운동할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만족한다. 육체적 수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쇠퇴하고 있으나, 육체적, 정신적, 기술적, 경험적 요소를 총합해보면, 적어도 아직은, 나는 매일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