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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섭 Oct 02. 2022

투자 거절에 대하여

다리를 불태울 것인가, 오히려 굳건히 만들 것인가

얼마전 한 VC 대표님과 말씀을 나누다가, 어떤 스타트업에 대한 평판 이야기가 나왔다. 그 VC에서 그 스타트업에 투자 제의를 했으나, 스타트업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고. 그런데 그 과정이 별로 프로페셔널하지가 않아서, VC 대표님이 모욕감을 느끼신 것 같았다. 


나도 이런 경험을 여러번 했기 때문에 잘 안다. 내가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예전에 몇몇 대표님께 받았던 몇번의 거절은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 있다. 어쩌면 반대로 내가 했던 거절에 상처를 받으셨던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투자를 제의하고 유치하는 과정에서 거절을 하고, 거절을 당하는 일은 병가지상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절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그 커뮤니케이션이 상대방에게 크게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고, 혹은 더 장기적인 인연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투자사와 피투자사의 관계에는 장기적으로 보면 갑도 을도 없다. 단기적으로는 돈을 쥐고 있는 VC가 갑처럼 보이고, 또 드물지만 엄청나게 인기 있는 스타트업에 여러 VC가 돈을 싸들고 온다면 그 스타트업이 ‘간택’을 하는 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들은 공생 관계이자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다. 어느 한 쪽이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쪽도 잘 되어야 한다.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관계가 투자 라운드마다 반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라운드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나, ‘우리가 갑이고 너네가 을이다’는 식으로 대응하면 결국 다리를 불태우는 것이 된다. 이번 라운드에는 그 다리가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다음 라운드에는 그 다리가 꼭 필요할 수도 있다. 세상사 모르는 일이고,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불확실성이 더욱 높다. 


그런가 하면 나는 매우 프로페셔널하고 너무도 사려 깊은 거절을 받아본 적도 있다. 지금 떠오르는 것은 한 투자사에 우리 포트폴리오를 소개해드렸을 때 받은 거절(한국 최고의 VC 중 하나이다)과 한 인재를 내가 회사로 모시고 싶어서 삼고초려하는 연락을 드렸다가 받은 거절이다. 두 연락 모두 ‘내가 거절 받는데 왜 기분이 좋지..?’ 할 정도로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거절이었다. (이 분들이 왜 일을 잘 하고,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후로 거절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연락들에서 내가 받았던 느낌을 떠올린다. 이 연락들의 공통점은 나라는 인간이나 우리 회사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특정 사안에 대한 거절 의사였고, 그 과정에서 나/우리에 대한 인정과 거절의 미안함을 아주 정제된 사려깊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다리를 불태우지 않았으며, 오히려 거절의 과정 속에서 서로의 다리는 더 굳건해지는 느낌이었다. 


투자 유치는 큰 돈과 함께 양쪽의 마음과 인생이 서로 교환되는 과정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인생을 걸고 사업을 하고, 또 나를 포함한 많은 투자자들도 인생을 걸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설득하고,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평가해야 하니, 서로 예민하고 마음이 다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서로 더 사려깊게 거절하고, 장기적인 관계 정립이 필요하지 않을지. 나도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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