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연차를 쓴 날. 이불빨래를 들고 코인세탁방에 왔다. 이불빨래를 해야지 다짐한 지 반년은 된 것 같은데, 너무 늦게 온 감이 있다. 주말에만 쓰는 이불이라서 그렇게 심각하게 더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뭔가를 하기로 해놓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데 반년이나 걸렸다는 건 빠르다는 것과는 꽤 거리가 먼 것 같다.
점심은 이런저런 사람들과 먹었다. 모호한 구름 같은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이런저런 사람들과 먹었다. 내 지인 둘, 그리고 그 지인의 지인, 그리고 갑자기 막판에 연락을 한 내 지인이자, 앞의 지인의 지인과는 또 지인인 사이인 사람. 두서없는 사람들과 두서없게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원래는 항상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지만 내가 불러서 나왔다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서, "저 말한 곧이곧대로 알아들을게요."라고 대답했다.
같이 식사를 한 무리 중 내 지인 하나는, 나에게 하려고 하는 일은 항상 하고 마는 사람이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글도 쓰고, 음악도 하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젠 글은 공책에만 근근이 쓰고 브런치에는 잘 올리지 않는 사람이고, 악기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손댈까 말까 하고, 다짐했던 이불빨래는 여섯 달 만에 하러 온 사람이다. 하려고 하는 일을 하기는 하는 사람인데, 사실 척척 해내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요새 같은 도파민 중독의 시기에 하려는 것을 해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극적이게 시간을 죽일 수 있는 많은 매체들이 존재하고,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을 하느라 시간을 다 죽이고 나면 남는 시간이 없다. 마음을 다잡고 가끔 키보드 앞에, 건반 앞에, 기타 스탠드 앞에 앉아보기는 하지만, 그 간헐적인 짧은 시간마저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일회성에 그치는 취미는 발전이 더디거나 없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회성이 아니라 습관이다. 한 번의 운동이 아니라 운동을 하는 습관이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다. 한 끼의 보양식이 아니라 꾸준한 식습관이 건강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끼의 보양식, 한 번의 운동이 안 하는 것보다는 분명 나을 것이다. 일회성에 그치는 취미 활동도 꾸준히 하는 것만은 못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역으로 도파민 중독이라는 습관으로 절여진 삶을 반전하려는 드문드문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기도 하고 그것이 무너지기도 한다. 운동은 정말 조금이지만 꾸준히 하고 있다. 글쓰기와 음악은 요새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꾸준하게 취미를 하는 리듬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살다 보면 남에게 하고자 하는 것은 하고야 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무 이유 없이 휴가를 쓴 날, 묵은 이불 빨래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불 빨래를 조금 더 자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