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세상에 자작곡을 내어놓고 쓰는 후기
음악은 오랜 취미였다. 엄청 본격적으로 임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완전히 놔 버린 적도 없는, 일종의 반려관계에 가까웠다. 살아가는데 전혀 필요가 없는 악기며 장비를 사서 모으거나 딱히 쓸 곳이 마땅하지 않는 작곡 프로그램이며 플러그인이며 하는 것들을 샀다. 돈을 쓰며 만족감을 느낀 것은 현대인의 공통된 속성이지만 굳이 음악 관련된 물건을 사 모은 것은 내 색깔인 셈이다. 가끔 의지가 샘솟는 날이 오면 녹음을 하고 영상을 찍었다. 조회수도 안 나왔고 크게 관심 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하고 싶은 맘이 자꾸 생겨났기 때문에 행동에 옮겼다. 그리고 정말 가끔 자작곡이 떠오르면 간단하게 녹음을 해서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만 가끔 들려주는 정도로만 소비하면서 그냥 가지고 있을 뿐, 어디에 내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는 물과 창문 너머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먹으며 방 한 구석에 파릇하게 앉아있는 다육이처럼, 무미건조한 삶에 파릇하고 산뜻한 어떤 부분을 담당한 채 음악은 삶 속에 계속 있었다.
하지만 비틀어 생각해 보면 잡동사니를 모은 것이고 망상을 한 것이다. 갖고 싶은 기타며 장비를 샀지만 살아가는 데는 하등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또래들은 그런 돈이 생기면 투자를 하거나 뭔가 과시할 수 있는 물건을 샀을 텐데, 가치가 감소할 뿐인, 나무로 된 줄 달린 물건을 사는 데 쓰는 건 효율을 따지면 빵점인 행동이기는 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인디 뮤지션의 앨범 타이틀곡이 될 정도로 괜찮은 곡 열 곡 정도만 써서 앨범 하나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생각만 했을 뿐이다. 글로 쓰이지 않은 채 머릿속에 있는 것은 세상에 내어지지 않은 생각일 뿐이고, 실천하지 않은 채 상상만 하는 것은 망상이라는 것이니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건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음악 인생 대부분을 혼자 소비하며 보내다가, 갑자기 남들 앞에 자작곡을 덜컥 내어놓게 됐으니까. 음악적인 기대는 없이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어 들어간 음악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다가 시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공모전에 내 자작곡으로 함께 나가자는 권유를 동호회 팀원으로부터 받게 되었다. 아무 준비가 안 돼 있었지만 그동안 해온 취미활동들을 그대로 하면 공모전에 출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덥썩 그러자고 대답했다. 맨땅에 헤딩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열심히 녹음했고, 영상도 만들었다.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지난 3주는 정말 파란만장했다. 제대로 글을 쓰면 열 편은 나올 것처럼 많은 일이 있었다. 세세한 이야기를 적는 것을 지양하려다 보니 뭉뚱그려 이야기하게 됐지만, 한 주만 더 일정이 있었다면 정말 지쳐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꽉 찬 하루들이었다.
출품한 "의미가 돼 줘"라는 곡은 공모전에 나가야겠다고 다짐한 뒤 하루 만에 쓴 곡이다. 기존에 썼던 곡들은 항상 무언가와 이별하는 순간 쓴 것들인데, 이번 곡은 처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며 쓰게 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사 모으던 잡동사니들과, 하등 쓸모없는 취미활동이, 동호회와 공모전이라는 트리거로 인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좋았다. "내 의미 없는 망상들을 현실이 되게 해 줘."라는 문장이 처음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곡이 멜로디와 다른 가사들을 낳아 곡의 틀을 잡았다. 그리고 동호회 팀원이 2절과 후렴구 가사를 완성해 주었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그렇듯 계시를 받은 듯 곡을 쓰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항상 초반에 떠오른 영감에서는 더 발전하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타인의 도움이라는 개입을 통하면, 영감을 받은 이후 정체되던 부분에서의 발전이 용이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물론 대단하지는 않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전혀 못 들어줄 정도로 이상하지는 않은 수준으로 완성을 해냈다.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곡을 들려주었고, 또 스케치이지만 완성을 해서 세상에 곡을 내놓게 되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음악은 그냥 여느 때와 똑같은 취미생활일 뿐이었다. 식물이 호흡하는 수준으로 조금씩 취미생활을 했을 뿐이다. 그런 망상이지만 방향성을 갖고 있으니 결국 한 점에서 수렴하며 의미를 갖게 된 것 같다.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음악으로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돈을 벌게 된 것도 아니다. 공모전에도 탈락했다.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더 열심히 취미생활을 할 동기를 얻었다. 자작곡을 가지고 오픈마이크 무대에 서 보고, 좋은 곡을 열 곡 정도 써서 앨범을 내 보는 것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정말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