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 대하여
최근에는 문상훈의 글을 읽었다. 모처럼 좋은 글을 읽었더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도 글을 쓰고 나도 글을 쓰지만 알맹이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하고 둥근 그와는 달리 나는 건조하고 저속한 면이 있다. 갑자기 떠오른 건 아니고 항상 하는 생각이다. 몸 어딘가에 있어 버릇처럼 어루만지는 흉터처럼.
문상훈의 글 중 짝사랑에 대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짝사랑을 예쁘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그랬다. 짝사랑에 대해서는 박사까지는 아니어도 석사 정도는 되는 내가 내린 결론은 짝사랑은 부질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의 나의 마음과 시간을 결실도 얻지 못하고 소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적어도 같은 경험을 한 다른 두 사람의 결론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 쪽이 마음이 더 따뜻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만했다.
누군가 내게 다가올 때,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차지 않을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과거 짝사랑을 했을 때 나의 모습이 보일 때 슬프다. 사랑이란 건, 관계란 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랑에 있어서는, 되려면 어떻게든 되는 것이고, 안 될 것은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버렸다. 쟁취라는 것도 결국은 안 될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될 것이었지만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을 더한 것이라 생각하게 돼버렸다.
위의 다소 운명론적인 생각에 더해, 스스로 낭만적인 생각은 덜 하게 되었고, 그래서 스트레스는 확실히 덜 받게 된 것 같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상태에 머물게 되었다. 그 대가로 조금은 차가운 사람이 된 것 같다. 이젠 누군가를 조건과 대가를 불문하고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음 쓰는 것이 싫고, 상처받는 것이 싫다. 머리가 덜 빠지고 잠은 더 잘 자게 되었지만, 마치 입고 다니는 셔츠들처럼 무채색으로 밋밋해져 버린 것 같다. 짝사랑을 지나왔지만 짝사랑이 사랑의 정수라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는, 알맹이 자체가 다른 탓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