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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무지개 Feb 09. 2017

로시니가 사랑한 트러플

역사 속 에피소드 7. '음악'을 관두고 '음식'에 빠진 이

음식을 음악보다 사랑하여 음악을 그만둔 사람이 있다면? 요즘엔 음식업체를 이끄는 음악 하는 연예인 사장들이 많아졌으니 이런 이변쯤은 이슈도 아니다. 당연히 떼돈 버는 수퍼(super) 스타가 아니라면 자기 사업을 위해 돈 안 되는 음악은 그만 둘 만도 하다. 생계형 사업을 생각하다 보면 예술은 언제나 뒷전인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예술이 융성하던 19세기의 유럽에도 이런 음악가가 있었다. 


라랄라 레이라~ 라랄라 라~!


오페라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세비야의 이발사] 중 으스대면서 '난 이 거리에서 제일가는(제일 잘 나가는) 이발사야~!'하며 풍부한 성량의 노래하는 남자를 상상할 수 있다. 랄라라 레이라~ 라랄라 라~! 모두가 한 번쯤은 따라 해 봤을 듯한 부분이다. 이 오페라의 작가, 이탈리아의 로시니(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음식을 너무나 사랑하여 작곡을 그만둔 음악가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가 프랑스 여행 때 잠깐이라도 들른 레스토랑에서 혹시, '아 라 로시니(a la Rossini)'란 명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의심치 않고 작곡가 로시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a la'는 '~의 풍으로, ~의 식으로'라는 뜻으로 '로시니 풍으로' 만든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 로시니가 살아생전 음식에 공헌한 대가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그만의 고유 요리 이름인 셈이다. 

로시니가 실제로 음악을 그만둔 배경은 모호하다. 그는 [빌헬름 텔]의 성공 후에, 더 이상의 명성을 얻을 필요도 없고, 놓칠 필요도 없다면서 음악을 그만두었다. 세간에는 '음식'에 빠진 나머지 '음악'을 그만두었다고도 한다. 그때 나이가 37세였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스페인 부인과 결혼했고, 프랑스에서 생활했다. 물론 훗날 자신이 믿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두 번째로 만난 여인과 결혼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로시니는 1823년 파리에 입성하였고, 자신의 명성 덕에 귀족과 예술인, 지식인 사이에 자주 초대되는 영광을 안게 된다. 그때 만난 사람이 [미각의 생리학]을 쓴 대법관,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과 그 당시 유명했던 프랑스 요리사 마리 앙투앙 카렘(Marie Antoine Creme)이다. 

앙투앙 카렘은 로스차일드(Rothschild) 남작 저택의 요리사였다. 그 당시, 프랑스의 제임스 로스차일드 집안은 대단한 부호였으며, 파리 최고의 명소로 빅토르 위고, 발자크, 하이네 등의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사교계의 중심지였다. 로시니도 빠질 수 없이 그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는 음식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곳에 갈 때마다 부엌으로 직행하여 음식을 평하고 조언했다고 한다. 유명한 음악가에다 몸짓도 크고 통통했으며 수다쟁이였던 로시니가 부엌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니 상상하지 않고도 풍경이 그려진다. 정말 대미식가에다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개발한 상당한 요리가 지금까지도 전해져오고 있다. 


한편, 마리 앙투앙 카렘이 유럽의 소스를 정립했다면, 로시니는 이탈리아의 파스타 요리를 유럽에 선보여 대중화했다. 우리가 먹는 스파게티는 그 덕에 이렇게 유명해진 것이다. 그는 마카로니를 특히 좋아했는데, 좋은 면과 궁합이 잘 맞는 소스를 기막히게 찾아내어 입맛을 살리기로 유명했다. 그렇게 37세에 은퇴한 미식가인 낙천적인 음악가가 요리 개발에 나서 많은 음식을 남겼다는데 그중 유명한 요리는 로시니식 스테이크인 투르네도 로시니(Tournedos Rosini)이다. 그가 얼마나 서양 송로버섯을 사랑한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소고기 안심(혹은 등심)에 푸아그라 및 검은 서양 송로버섯(Tuber melanosporum)을 얹어 만든 유명한 요리이다. 아직도 유럽 전역에서는 로시니 풍으로 만든 이 음식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기도 한다. 

투르네도 로시니, 사진: wikipedia.org By kennejima


로시니가 대중 앞에서 두 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한다. 한 번은 세비야의 이발사 실패 이후에, 또 한 번은 서양 송로버섯이 올라간 칠면조 요리가 물에 빠졌을 때라고 한다. 그렇게 음식 때문에 눈물을 흘릴 정도이니 그의 타고난 미감(味感)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음악가와는 다른 면모를 지닌 유쾌하고 낙천적인 미식가, 그의 이름 로시니. 우리에게는 음악가로 익숙한 이 이탈리아 작곡가가 사실은 상당히 인간적인 미각으로 (놀고먹고 마시는) 일생을 즐겼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덕에 서양 송로버섯은 미식가들의 감각을 일깨우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의 이름이 생뚱맞게 메뉴에 오르는 일이 많다니, 정말 대단한 미식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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