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무지개 Feb 09. 2017

트러플(truffle) 사냥꾼

역사 속 에피소드 8. 세계 대전 후의 트러플

제 1, 2 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은 모든 농업과 산림업에서 황폐해져 갔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채소 애호가, 빌 로스(Bill Ross)는 영국이 승리를 거둔 이유가 시민들이 채원을 유지하고 꽃과 잔디가 아닌 많은 채소를 재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영국은 적군의 폭격을 많이 받지 않았으니 그것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신선한 감자, 파스닙, 당근 등의 채소가 적절한 때에 군인들에게 제공되었고, 전쟁에 대비한 비상식량마저 신선하였으니 에너지 충당하기에는 그지없었다. 그 당시 조지 오웰(George Owell)은 "사람들은 그전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 뚱뚱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라고 했는데 전쟁이 가져다준 긴장감이 (예상을 뛰어넘고) 사람을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이끌었나 싶다. 부족함 속에서 진정한 보석을 발견하는 것처럼 이것도 그런 류가 아닐까? 물론, 우리는 그 당시의 큰 고통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죽음의 수용서에서]의 저자로 유명한 로고 테라피 창시자인 빅터 플랭클(Viktor Frankl)도 그랬다. 사람들은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워했으나 정신적으로는 더욱 건강해지지 않았는가, 하고 말이다. 수면부족, 정신적 장애를 앓던 이들이 수용소 안에서의 긴장된 생활로 그런 고통을 이겨냈다는 소리다. 

전쟁은 그렇다. 인간 본연의 생사에 대한 문제로 럭셔리한 생활은 잊기 마련이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내가 먹고 살 일이 가장 중요하다. 사치스러운 모든 것들은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트러플(truffle)은 당연히 잊히게 되었다. 


한편으로 전쟁이 끝나갈 즈음의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시골로 귀향하는 현상이 증가했다. 황폐한 도시에서 먹고 살 일이 까마득하니, 농촌에서 밭 일구어 직접 먹을 것을 기르는 게 살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시골로 돌아간 프랑스인들은 깜짝 놀랐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소개한 19세기 프랑스 농민, 죠세프 탈롱의 이야기를 들은 선조들이 뿌려놓은 도토리에서 자란 나무가 온 산을 뒤덮고 있었으니 말이다.  

떡갈나무, 참나무, 너도밤나무, 개암나무...... 바로 트러플이 자라는 나무들이 온 천지에 자라났다. 전쟁 통에 이렇게 도토리가 싹을 틔운 나무들이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더 울창해졌다. 이때 프랑스는 이 울창한 숲을 계기로 다시 식도락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트러플을 다시 채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웃인 스페인은?


스페인의 긴 역사상, 트루파(trufa, 서양 송로버섯의 스페인명)의 식용이 금기시되었다. 악마의 열매라 소화가 되지 않는다, 라는 트집으로. 게다가 스페인 내전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먹고 살 일이 더 중요하여 트루파 같은 것은 금방 잊게 된다.


역시나 조지 오웰이 참전한 스페인 내전 중에도 트루파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가 있었다.

"테루엘에 근접한 곳에서 참호를 파면서 우리는 시커먼 감자를 발견했다. 그런데 전쟁 후에 그것과 똑같은 것을 프랑스인들이 와서 캐가는 것을 보았다."라며 까딸루니아의 한 노인이 회상했다.

그 후 60, 70년대에는 프랑스인들의 영향을 받은 까딸루니아 인들이 테루엘과 카스테욘의 내륙으로 트루파 사냥을 나간다. 

"아주 이상한 차림의 바르셀로나 사람들을 보았다. 개를 데리고 왔는데 총은 없었고 사냥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땅에서 시커먼 감자를 한 자루 캐가는 것이 유일했었는데, 그 자루에서는 악마의 냄새가 났다. 지독히 고약한 냄새다. 그런데 그것이 트루파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후에 우리가 그 시커먼 감자를 캐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라며 카스테욘의 한 오래된 트루파 농사꾼이 회상을 했다.

글쓴이가 사는 비스타베야(Vistabella)에서도 70년대의 트루파 붐을 타고 부자가 된 몇몇 사람들이 있다. 청정한 고산 기후와 석회질이 많은 산성토로 인하여 병충해 없고 단단한 검은 서양 송로버섯(Tuber melanosporum)이 제 값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페인은 이웃 나라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각종 단체와 연구소 등이 문을 열고 트루파 연구에 몰두한다. 프랑스와는 다른 맑고 깨끗함에서 큰 점수를 얻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수입을 많이 해간다. (스페인 산이 가끔 국경이 가깝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산이나 프랑스 산으로 둔갑되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이 검은 서양 송로버섯의 제 2 생산국이기는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세계를 장악할 것이라고 몇몇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프랑스의 트러플 생산은 아주 오래되어 병충해가 잦다는 게 작은 단점이며, 나이 많은 나무에서는 트러플 생산량이 적게 나타난다 게 또 단점이다. 반대로 지금 한창 자라나는 스페인 고산의 나무는 아직 어리고, 병충해도 적다는 게 장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곳의 젊은 트루파 농사꾼들은 트루파가 비싼 음식의 조미료가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요리 재료가 되기를 바란다. 큰 맘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그런 저렴함으로 세계를 장악할 날이 과연 올까?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시니가 사랑한 트러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