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에피소드 1. 자라는 배경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 한 때 오찬 메뉴에 서양 송로버섯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분개한 적이 있었다. 국민의 허리를 조르는 전기료 누진제 논란으로 국민이 많이 힘든 상황에 세계 3대 진미라는 그 호화스러운 서양 송로버섯이 오찬으로 올랐으니 말이다. 국민 정서를 생각하지 않고, 비싼 향신료를 썼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분개했지만, 정작 청와대 관련 담당자들은 이 오찬에 쓰인 버섯은 중국 윈난 성에서 나는 버섯이며, 일 인당 5g도 안 쓰였을 것으로 해명한 적이 있었다.
이런 스캔들 덕분이었는지 그 주 검색어에는 '(서양) 송로버섯'이 단연 으뜸이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 생산지가 어디이든 이 '트러플'이라는 단어는 '호화'에 가깝다. 그만큼 비싸기로 유명하니 말이다. 설사 중국산이라고 해도 비싼 건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자료를 G 마켓 기준으로 윈난 성에서 난 그 버섯은 50g에 5만 6000원 정도다. 솔직히 중국산 치고는 비싼 가격이다.
아마도 수입 절차와 중간 수입자 덕에 떡값이던 중국산 트러플이 뻥튀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보통 유럽산 트러플은 그 몇 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트러플 이름 덕분에 생산지가 어디이든 우리는 쉽게 속을 수 있다. 트러플은 무조건 비싸다고.
트러플은 새카맣기도 하고, 종류에 따라 하얗기도 하며, 대부분 단단하며 울퉁불퉁 동그란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작은 것은 콩처럼 작기도 하고, 큰 것은 핸드볼 공만큼이나 크다고도 하니, 환경적 지배를 무척이나 많이 받는 녀석이다. 그럼 이런 트러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일단, 트러플은 땅에서 나오는 희귀한 존재다. 우리 눈으로 쉽게 찾을 수 없는 땅 속 버섯이다. 그렇다고 아무 땅에서나 나오는 존재는 아니다. 일단 나무뿌리에 공생하면서 살기 때문에 나무와 많은 연관이 있다.
트러플이 자라는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일단 트러플 농가에서 심는 나무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보면, 참나무, 떡갈나무, 그리고 개암나무가 있다.
참나무는 학명으로 Quercus ilex로 이베리아 참나무가 주로 많이 쓰인다. 나뭇잎이 아주 작고 뾰족하며 도토리를 생산하지만, 주로 맛이 써서 야생동물이나 멧돼지, 이베리아 흑돼지가 먹는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가진 침엽수림이라 멀리서 보면 보는 이를 시원하게 해주지만, 가까이서는 뾰족한 입 때문에 진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좌) 이베리아 참나무, (우) 떡갈나무
(좌) 헤이즐넛이라 불리는 개암 열매, (우) 개암나무
떡갈나무는 학명으로 Quercus robur로 가을에는 잎이 노란색으로 변하는 활엽수이다. 겨울에는 벌거숭이가 되지만, 나무껍질은 참나무와 매우 유사하다. 나뭇잎은 한국의 떡갈나무와 아주 비슷하나 그 크기가 훨씬 작다. 이 나무는 대체로 부드러워 진입하기가 쉽다.
마지막으로 개암나무는 우리가 흔히 아는 헤이즐넛을 생산해내는 나무다. 한국에서는 개암이라고 하는데 현대인들은 헤이즐넛으로 더 잘 알고 있다. 그 유명한 악마의 누텔라(nutela)에는 이 헤이즐넛과 초콜릿이 들어간다는 사실. 개암나무는 참나무나 떡갈나무의 도토리에 비하면 개암이라는 열매를 주기에 트러플 농사꾼들은 참나무와 섞어서 심기도 한다.
이런 나무들은 어디에서 자라날까? 일단 유럽에서 생산되는 주요 3국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이다. 그런데 같은 나무라고 해서 다 똑같이 서양 송로버섯을 품을 수는 없다.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요인을 갖추어야만 잘 자라날 수 있다.
가장 생산량이 많고, 유통이 활발한 검은 서양 송로버섯인 투버 멜라니스포룸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트러플이 잘 자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흙의 성분이다. 유럽의 흙이 대부분 알칼리성이라 석회가 많다는 것은 이미 상식으로 알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맥주를 물보다 더 마신다고 들 하지 않았던가. 일단 알칼리성의 흙으로 Ph7.5에서 8.2 사이에 자라난다고 한다. 최적은 ph7.8-7.9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해발이라고 한다. 물론 이탈리아에서는 해발 100m에서도 자라나는 트러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투버 멜라니스포룸의 경우에는 해발 700-1,200m 사이가 최적이다. 물론 스페인 같은 경우에는 해발 1,800m 그라나다에서도 트러플이 발견된 경우가 있지만 말이다.
토양은 모래 알갱이처럼 수분이 잘 빠져나가야 하며, 인공 재배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흙을 섞어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하면 모양새 좋은 트러플을 얻을 수 있다.
보통 인공재배의 경우, 트러플을 얻기 위해선 균류를 뿌리에 접속시켜 모종을 심어주면 나무 종류에 따라 3,4년이 지난 시점부터 재배할 수 있다.
도토리를 심은 모종으로 보통 3,4 년이 지난 시점 트러플을 획득할 수 있다. (우) 떡갈나무 모종
위의 두 사진 - 뿌리에 균류를 이미 접속시킨 이베리아 참나무 모종
모종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떡갈나무의 성장 속도는 이베리아 참나무보다 빠르기 때문에 모종을 심은 후 1년 정도 빠르게 트러플을 수확한다고 한다. 보통 떡갈나무는 모종 심은 2년 후부터 트러플이 생산되는 반면, 이베리아 참나무는 3,4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나무가 자라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한 법. 이 작은 나무에서 큰 트러플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최대의 생산량을 기대하기 위해선 보통 12년 정도 자라게 둬야 한다는 소리.
트러플 인공재배라 하여 달리, 희한한 기계를 써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희한한 약품을 써서 자라게 하는 것도 아니며, 희한한 유전자 조작으로 더 크게 생산해내는 것도 아닌, 단순하게 뿌리에 균류가 접할 수 있도록 인간이 도와주는 형태이다. 그래서 트러플이 자랄 수 있도록 토양 조절을 하고, 균류가 사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말린 균을 뿌려준다거나 재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인간의 인공재배라 할 수 있다.
이런 모종이 심어지면, 농가에서는 관계시설을 이용하여 물을 대거나 좋은 흙을 트러플이 자라날 예상 공간에 뿌려주는 일들이 매년 반복된다.
인공적으로 조절한 부식토(좌)와 나무가 자라날 성장에 필요한 활성제(우)
땅 속 버섯이라는 트러플은 여름과 겨울, 두 계절에 집중적으로 자라나는데 역시나 인간의 관리로 요즘은 수확량이 늘고 있다. 주로 유럽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3국에서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며, 여러 연구 기관이나 트러플 전람회를 통해 대중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은 가격이 만만치않기 때문에 여전히 금값으로 오가는 상황이기도 하다.